相爱相杀
이세돌 팬들을 깜빡 죽게 하는 진짜 무기는 그의 플레이스타일이다. 한 판 벌어질 때마다 구경꾼들이 여럿 들것에 실려 나간다. 예외 없이 활극으로 시작해 대형 액션 드라마로 끝나기 때문이다. 치열한 승부기질과 투혼은 어떤 격투기서도 못 느껴본 압권이다.황홀하고 환상적이며 아기자기하고 드라마틱한데 사전에 준비된 각본은 단 한 컷도 없다. 15급부터 7단까지 두루 기절시키는 놀라운 매직(magic)이다. 편한 자세로 기대앉은 채 인터넷 라이브로 이세돌 혈전보를 관전할 때의 희열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운우지락(雲雨之樂) 정도?(共感 不要, 是非 謝絶).이세돌의 위대함은 그의 스타기질에서 절정으로 개화(開花)한다. 성적 뛰어나고 기풍 ‘싸나운‘ 기사라면 이세돌 말고도 몇 명 더 있다. 하지만 3판 양승제의..
1. 한국바둑에도 봄은 오는가 목진석과 이세돌 12월 20일은 한국바둑 반란의 날이었다. 이날 약관(弱冠) 20세의 목진석 五단이 세계바둑 랭킹1위 이창호 九단을 2:1로 꺾고 KBS바둑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이제 17세에 불과한 이세돌 三단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는 유창혁 九단을 3:2로 물리치고 n016배 배달왕기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20일 오후 5시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목진석 五단이 시소접전 끝에 부동의 일인자 이창호 九단을 따돌리고 생애 첫 타이틀을 차지한 지 정확히 1시간 30분 뒤 상왕십리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선 ‘비금도 섬소년’ 이세돌 三단이 유창혁 九단을 제압하며 보름전 박카스배 천원 타이틀 우승에 이어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TV속기전이긴 하나 목..
1995년 7월 이세돌이 12세의 나이에 입단하자 승민애비는 꼬맹이 세돌이에게 프로바둑의 기록을 맡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는 프로가 되면 의무적으로 10판의 바둑을 기록해야했지요. 기록(記錄)이란 대국(對局)을 기보용지에 그대로 옮겨적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당돌한 꼬맹이는 20여년 연상인 아저씨의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어이없어하자 스승인 권갑용 사범이 승민애비에게 오더군요. “승민애비씨, 세돌이는 좀 봐주게. 저 친구는 기록을 할줄 모르네” 재차 어이가 없었습니다. 승민애비같은 하수도 하는 기록을(조훈현-이상훈의 대국만 아니면 할 수 있습니다) 프로기사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세돌은 정말 기록을 할 줄 몰랐습니다. 하기 싫어서 안한것이 아니고 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