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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13/조선일보] "외국고수보다 후배들이 부담돼"

교선생 2019. 10. 8. 15:34

▲ 절정의 승부 나이 22세. 외국 기사들을 상대로 1년간 승률 9할 이상의 고공 행진을 펼치고 있는 이세돌은 “한 시대를 풍미한 기사로 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기원 제공

 

이젠 ‘외국 기사 킬러’로 불러야 할까. ‘쎈돌’ 이세돌(22) 九단의 국제 무대 활약상이 심상치 않다. 현역 국제 2관왕인 이 九단은 지난해 5월 이후 만 1년간 외국 기사를 상대로 치른 24국 중 단 2패만을 기록하며 후지쓰배 4강, LG배 8강, CSK배 전승(3승) 등 무서운 기세로 무풍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항상 바둑판 안팎으로 화제를 몰고다니는 이세돌을 만나봤다.

 ―지난 1년간 삼성화재배 준결승, 도요타덴소배 결승 등 두 차례 3번기서 구리(古力) 및 창하오(常昊)에게 한 판씩만 패했다. 하지만 둘 모두 2대1로 이겼으니 이 九단을 꺾은 외국 기사는 1명도 없는 셈이다. 비결이라도 생겼나?
“그런 것 없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맘이 편했다고나 할까…. 외국 기사들은 국내 동료들에 비해 훨씬 덜 부담스럽다. 전력 면에서도 우리나라가 1위다.”

―이 九단의 현재 국내 타이틀은 제한 기전인 맥심배 하나뿐으로 사실상 무관(無冠)이다. 혹시 국내에선 대충 두는 건 아닌가?

“그럴 리 없다. 나도 국내 타이틀이 아쉽다. 5월부터 한 달여간 87년생 후배 3명에게 중요 고비 때마다 잡히는 바람에 전자랜드배와 국수(패자전)만 남았다. 4살 이상 차이나면 영 부담스럽다. 국제 1개, 국내 1개 우승이 금년도 기본 목표다.”

―최근 국제 전적을 보면 이세돌 九단이 이창호 九단보다 월등하다. 하지만 둘 간의 상대 전적에선 5연패를 추가하면서 통산 15승20패로 벌어졌다. 이 九단을 만날 때마다 이창호를 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지난해 여름 왕위전 5번기서 역전패한 여파가 컸다. 뒤이어 LG배 8강전서도 서둘다 패했고, 그 뒤부터 초조감이 증폭돼 온 것 같다.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그러나 강박감까지는 아니다. 다시 넘어설 것이다.”

―이창호 九단 바둑은 어떤 점이 강한가? 대국할 때 받는 느낌은?

“부분부분이 확실하며 잘 안 무너진다. 페이스에 말리면 이기기 힘들다. 그래서 좀 더 두텁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 국가 대항전인 CSK배에서 주장을 맡아 한국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앞으로도 단체전 주장을 맡게 되나?

“이창호 사범님은 흑을, 나는 백을 좋아하다 보니 상의 끝에 그렇게 됐다. 3판 중 2판의 주장을 맡아 다행히 다 이겼다. 만약 농심배 같은 대회서 주장을 시킨다면 안 두고도 우승할지 모르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웃음).”

―최근의 실적을 중심으로 현역 세계 베스트 5를 꼽아본다면?

“1등은 이창호 사범님이고…. 2위부터 5위까지는 매우 어렵다. 글쎄…2등은 나 아닐까요?(웃음). 다음으로 박영훈, 창하오, 최철한, 장쉬 정도의 순서가 될 것 같다.”

―이 九단도 벌써 우리 나이로 20대 중반을 바라본다. 모든 선배들이 나이 들면서 쇠퇴했는데, 몇 살이 분수령이라고 보나? 어린 층에서 특별히 재주 있다고 생각하는 후배라면?

“어렵다.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조훈현 사범님은 50에, 유창혁 사범님은 40대 이후 조금씩 내려왔는데 나는 35세쯤 될 것 같다. 특별히 두렵게 느껴진 영재는 없다. 발전 속도가 대개 비슷해 노력에 달렸다고 본다. 김지석이 열심히 하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술 담배를 많이 하는 기사로 알려져 있다. 한 자리에서 소주 7~8병까지 마셨다던데?

“약간 과장됐다. 6병까지는 마셔봤으나 점점 줄어서 요즘엔 식사 때 1병쯤 마신다. 자주 하는 편도 아니다. 중요 대국 전야 잠이 안 오면 맥주를 서너 캔 한다. 담배(디스 플러스)는 좀 늘어서 하루 1갑 정도다.”

―주변에 여러 유혹이 많을 나이다. 바둑 공부는 어떻게 하며 여가 시간 보내는 방식은?

“현장 검토가 특히 재미있다. 남의 최신 기보는 거의 안 빼놓고 본다. 큰 유혹은 없다. 운동을 거의 안 하지만 보통 체력은 된다. 당구가 150점 정도이고….”

―여자 친구가 있나? 결혼은 어떤 타입과 몇 살쯤 할 생각인지.

“옛날 한때 짧게 사귄 여친이 있었다. 프로 기사는 아니다. 아무리 늦어도 33살 이전엔 해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이상형도 자주 바뀌는데 날 잘 챙겨주는 여자가 좋겠다. 연예인 중에선 전지현씨가 제일 좋다. 이유? 아, 예쁘잖아요(웃음).”

―이달 초 후지쓰배 전야제 때 선수 중 혼자 불참, 주최측이 크게 당황했다고 들었다. 깜빡했나?

“알고 있었다. 8강전 전야제란 게 생소한 데다 전체적인 진행이 탐탁지 않아 그냥 내 방에 있었다. 음식도 안 맞을 것 같고…. 기사는 공인(公人)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만, 이런 경우 내키지 않으면 꼭 참석할 의무는 없다고 본다.”

―7월이면 프로 기사가 된 지 정확히 10년이다. 바둑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쉽고 간단하다. 붙이고 끊고 늘고…10여가지의 동형 반복이다. 하지만 가장 쉬운 게 가장 어려운 것이라니까…. 바둑의 본질은 전투보다는 계산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총 수입은? 한 50년 후쯤 어떤 기사로 바둑 역사에 기록되길 원하나?

“한 시대를 풍미한 기사로 남고 싶다. 바둑으로나 인간으로나 부끄럽지 않은…. 총 수입은 12억~13억원 되겠지만 세금 빼면 10억원이 안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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