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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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nn/LG배세계기왕전] 이세돌 대 구리, 끝나지 않은 황금대결

교선생 2021. 11. 11. 11:31


이세돌과 구리(古力)의 전쟁은 쉽게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2012년 9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세 합이나 겨뤘다. 지금까지 맞싸운 회수가 31회. 정말 이 시대 최고의 라이벌이란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9월 초순 베이징서 벌어진 제17회 삼성화재배에서 둘은 국제대회 사상 최초의 ‘판빅’을 연출했다. 판빅이란 특정 형태가 순환 반복돼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승부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승패를 꼭 가려야만 할 상황이어서 ‘연장전’까지 치렀다.

두 라이벌은 뒤이어 9월 17일 중국 꾸이린(桂林)시에서 끝난 제1회 한중일 프로바둑 세계선수권서 또 다시 패권을 놓고 마주쳤다. 준결승서 일본 요다(依田紀基)를 꺾은 이세돌은 대회 패권과 열흘 만의 설욕 등 2마리 토끼를 노렸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둘 간의 균형은 아직 깨졌다고 볼 수 없다. 2004년 6월 중국 갑조리그에서 첫 대결을 치른 이후 현재까지의 전적은 구리가 16승 14패 1무라는 간발의 차이로 앞서고 있다. 올해 9월 이전까지 두 기사는 14승 14패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세돌이 추격과 역전을 이룰 가능성은 아직 충분하다.

두 기사의 라이벌 의식은 누구의 눈에도 느껴질 만큼 확연하다. 29세 동갑에다 여러 해 동안 한 중 양국 최강자로 꼽히며 처절하게 승패를 주고받아왔기 때문이다. 스타일 역시 둘 모두 힘을 앞세워 전면전을 펼치는 치열한 기풍이어서 관전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빨려 들어갈 만큼 짜릿하다. 양국 공식랭킹에서 나란히 1위에서 밀려난 두 기사의 대결이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조훈현과 서봉수, 우칭위안과 기타니, 사카다와 후지사와 등 지난날의 라이벌 커플을 능가하는 최고의 흥행카드다.

그러면서도 둘은 상당히 친하다. 서로를 인정하다 보니 남다른 우정이 싹텄다 할까. 반상(盤上)을 벗어나면 꾸밈없는 모습으로 잘 어울린다. 하지만 바둑판 앞에선 찬바람이 씽씽 인다. 둘이 국제대회 타이틀을 놓고 처음 겨룬 결승전은 2009년 초에 벌어졌던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이었다. 이세돌은 그 해 6월 바둑계에선 좀체 드문 휴직에 들어갔는데, LG배 결승전 패배의 충격이 휴직까지 이어진 이유 중 하나의 이유였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구리는 구리대로 훗날 “그의 휴직은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좋은 상대를 잃은 나는 상당히 방황했다”고 회상했다. 이세돌은 2011년 제3회 비씨카드배서 구리에게 설욕할 기회를 잡았고, 결승에서 2대2가 되자 최종 5국 전날 밤 대국장 근처에 숙소를 잡았을 만큼 총력을 쏟았다. 그 대결 결과 이번엔 구리가 한 동안 슬럼프에 빠졌었다. 구리는 자신과 이세돌이 겨룬 바둑 28국을 엄선, 자전해설을 붙여 책을 만들었고 최근 출간했다. 평소 이세돌을 꺾기 위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증거물’인 셈이다.

 

▲ 중국 현지 검토실의 모니터가 이세돌-구리 전의 4패빅 무승부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대회 본선에서 4패빅이 나기는 처음이다.


이번 삼성화재배에서의 ‘판빅’ 사건은 이 같은 둘 간의 물러설 수 없는 승부의식이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경우는 ‘4패(覇) 빅‘이었다. 9월 4일 베이징서 치른 이 바둑이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주최 측도 한 동안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전례가 없었기 때문.

중국 쪽에선 다음 날 대국 부담 등을 감안해 추첨을 제안했으나 주최 측인 한국이 “뽑기승부는 허망하다”는 이세돌의 의견을 감안해 재대국으로 결정했다. 대국장도 생중계를 위해 따로 잡은 쿤륜호텔에서 나머지 대국들이 벌어졌던 캠핀스키 호텔로 이동해야 했다. 1, 2국 사이에 식사를 위한 1시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정규대국 제한시간이 1인당 2시간씩인데 반해 재대국은 각자 1시간에 1분 초읽기 5회씩으로 조정됐다.

재대국서 흑백 돌은 새로 가렸다. 짜투리 시간을 포함해 재대국은 3시간이 소요됐고 구리가 승리했다. 1국도 그랬지만 2국 역시 짜릿함의 연속이었다. 초반 대마를 잡힌 이세돌은 무서운 힘으로 역전에 성공했는데 마지막 순간 실착으로 결국 패했다. 천하무적 이세돌의 바둑 평생에 하루 두 판을 두어 한 판도 이기지 못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세돌은 연장전 격인 2차전의 경우 “쌍방 체력문제를 감안해 막바로 초읽기에 들어가는 속기로 두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훗날 말했다. 구리 도 “속기에선 이세돌이 나보다 좀 나은 것 같다”고 시인한다. 두 기사는 원래 당일 바둑이 끝난 뒤 함께 술을 한 잔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고 한다. 예정에 없던 소동(재대국)으로 이 약속은 결국 이행되지 못했다.

한편 이번 연속대결을 고비로 두 사람이 10번기를 통해 진정한 우열을 가려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다시 일고 있어 주목된다. 10번기 안은 4~5년 전 둘이 나란히 한 중 양국 일인자였을 때 처음 추진되다가, 이세돌의 휴직과 두 기사의 자국 랭킹 하락 등이 이어지면서 중단됐었다. 현재 이세돌은 한국랭킹 2위, 구리는 중국 8위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이세돌은 지금까지 통산 세계대회 우승 회수가 13회에 달한다. 구리가 획득한 세계 타이틀 개수도 7개나 된다. 한 중 양국에서 일부 젊은 기사들이 요즘 반짝 활약을 보이고 있지만, 경력의 두터움에서 이세돌과 구리를 능가할 확실한 인재는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랭킹과 관계없이 둘 간의 10번기는 흥행가치와 바둑사적 의의를 모두 갖춘 명승부가 되리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중국에 비해 바둑 열기가 다소 덜 한 한국으로선 인기 회복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과거 일본에선 천재스타 우칭위안을 중심으로 기타니, 하시모토, 사카다 등과의 10번기가 이어지며 바둑 동호인 인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 청대 국수 범서병(範西屏) 대 시상하(施襄夏) 간 10번기도 전설로 남아있다.

이세돌과 구리는 공통점 못지않게 차이점도 뚜렷하다. 이세돌은 중반전투와 종반 마무리에 강한 반면 초반에 상대적으로 약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구리는 초반 감각이 뛰어나고 중반 전투도 발군이지만 종반에서 삐끗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중반 전투능력이 서로 상쇄된다면 구리의 초반과 이세돌의 종반이 격돌하는 셈이다. 또한 시간이 짧은 바둑일 수록 이세돌이 약간이나마 편한 것으로 평가된다.

둘 간의 10번기가 성사될 경우 제한시간, 초읽기 회수, 대국 장소, 승패에 따른 대국료 차등분배 등이 주목된다. 또 하나는 치수고치기 방식 도입 여부다. 과거 일본의 10번기는 대부분이 치수고치기로 치러졌다. 4승차가 나면 호선(互先)에서 선상선(先相先), 다시 정선(定先)으로 조정되는 식이다.

절정 프로기사들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치수고치기는 피해야 한다는 의견, 어차피 승패에 의해 명예까지 결정된 만큼 10번기의 짜릿한 특성을 살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모두 나온다. 아무튼 이세돌과 구리는 구시대의 유물(?)인 10번기의 추억을 되살리게 할 만큼 세기의 라이벌임을 다시 확인했다. 10번기 성사 여부에 관계없이 둘은 죽을 때까지 밀고 당기는 치열한 시소게임 속에 짜릿한 승부를 이어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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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배 세계기왕전

  이세돌 대 구리, 끝나지 않은 황금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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