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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06/경향신문] 승승장구의 전성기 구가 바둑천재 이세돌

교선생 2022. 2. 28. 01:58

 

“반상 복귀 후 자신감 표현하는 것은 좀 자제합니다”
바둑 천재 이세돌 9단이 요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지난해 있었던 휴직파동을 조기에 마무리짓고 올 1월 바둑계로 돌아온 뒤 두었다 하면 이기는 바둑을 이어가고 있다. 복귀 직후 내리 24판을 이겨 바둑계를 놀라게 하더니 이날 현재 47승 7패, 승률 87%의 경이적인 전적을 기록 중이다. 한국기원에서 매달 성적을 집계해 매기는 월별 랭킹, 프로 입단 후 지금까지 전적을 반영해 매기는 통산랭킹 모두 부동의 1위다. 바둑에 공식적인 세계랭킹은 없지만 그가 중국의 쿵제(孔傑)와 함께 1위 아니면 2위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1990년대 조훈현, 2000년대 이창호에 이어 지금은 ‘센돌(이세돌의 애칭)의 시대’인 것이다.

올해 스물일곱. 아무리 천재라 해도 세상의 물리를 깨우치기에는 부족해보이는 나이인데 바둑 인생에선 절정을 맞은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며, 절정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또 본인은 지금의 승승장구 행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이 9단을 찾은 것은 이런 바둑계 일반의 궁금증을 풀어보기 위함이다. 인터뷰는 2010년 경향신문 원익배 십단전 개막전이 열린 지난 3일 한국기원 대국실에서 있었다.

- 올해 성적이 아주 좋습니다. 조금 전 끝난 오늘 경기도 이겼죠?

“아 예, 뭐…”

지난해 휴직하지 않았다면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예선전, 그것도 첫 경기였으니 이겼다고 말하는 게 이 9단에게는 쑥스러운 모양이다.

- 오늘 경기는 별 어려움이 없는 것 아닌가요?

“좀 그렇기는 한데요, 그래도 만만치는 않아요. 프로는 프로거든요.”

하긴 잠시라도 졸면 죽고, 눈 깜짝할 사이 코 베어가는 게 프로의 세계다. 국수(國手)라고 해서 힘 안들이고 늘 이길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인터뷰에 응하는 이 9단의 태도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먼저 온다. 종전의 이세돌 어법이라면 “제가 무조건 이기죠”라고 할 만했기 때문이다.

- 복귀 후 이 9단이 부드러워졌다고 하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실제 그런가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보고 달라졌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사실 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자신감이야 지금도 있습니다. 컨디션도 좋고요. 다만 그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은 좀 자제하자,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지만 사실 이건 큰 변화다. 과거와 비교해보자. 10년 전 바둑계에 혜성같이 나타나 ‘천하의 고수’를 차례로 이기고 세계대회 우승을 눈앞에 두게 되었을 때 그는 “실력으로는 내가 창호형(이창호)에게 앞선다”고 말했다. 중국 기사 창하오 9단과의 경기를 앞두고 “내가 질 리가 있겠어요?”라고 하고, 존경하는 바둑기사가 누구냐고 물으면 “좋아하는 기사는 있어도 존경하는 기사는 없다”고 말하던 그다. 오죽하면 어느 바둑담당 기자가 “바둑 한냥, 사람 서푼”이라고 평했을까. 이에 비춰보면 “프로라면 누구도 만만치 않다”고 하는 지금의 태도는 거의 환골탈태 수준이다.

- 나이 들면서 성숙해진 건가요.

“지금도 어리지만 아무래도 20대 초와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그때는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나이에는 그게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생각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이창호 사범님은 정말 최고의 기사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죠.”

겸손해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바둑 둘 때 상대의 기력과 상관없이 “한 수 배우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입에 발린 말 같아 잘 안나온다는 그다. 그런데 이창호 9단 이야기가 나오자 면전에 사람이 있기라도 하듯 깍듯해진다. 기계(棋界)의 강호를 다 때려누이면서도 유독 이창호 9단 앞에서는 맥을 못추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둘의 전적을 보면 이세돌 9단이 23승31패로 밀리는 것도 사실이다.

- 그래도 며칠 전 물가정보배 결승 1국에서 이겼잖아요.

“그건 운이 좋아서 이긴 겁니다. 그보다 앞서 열린 명인전 경기에서는 제가 졌고요. 실력면에서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가 말하는 실력이 무얼 의미하는지 하수(下手)들이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두 기사의 바둑 스타일이 크게 다르다는 점만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창호 9단이 치밀한 수비형이라면 이세돌 9단은 저돌적인 공격형이다. 한 사람은 정확한 수를 두고 다른 한 사람은 상식밖의 수를 둔다. 두 천재를 대비시키는 말도 많다. “바둑의 신이 이창호를 만들자 이를 시기한 악마가 이세돌을 만들었다” “이창호 바둑은 수준높은 교양다큐이고 이세돌 바둑은 스릴 넘치는 추리드라마다” 등등.

- 그런 표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동의합니까?

“제가 초반에 밀리다 중반에 강한 스타일이거든요. 때론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 역전승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표현이 나온 것 같은데, 제가 이창호 사범님과 비교된다는 게 감사하죠.”

- 올 들어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복귀 초반에 운이 좋아서 이기기 힘든 바둑을 몇번 이긴 적이 있습니다. 그 바람에 그런 거예요. 하지만 승부에선 이겼어도 내용면에선 썩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 그런가요? 그럼 요즘 본인 바둑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점을 주고 싶으세요? 100점 만점에….

“승부만 따지면 70점 이상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면으로는 60점도 주기 어렵습니다.”

- 무엇이 모자란 건가요.

“입단 전부터 그랬는데 초반에 약한 게 문젭니다. 아무것도 없는 바둑판에 하나씩 돌을 놓아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형세가 좀 만들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 처음에는 정석에 따라 포석하는 거 아닌가요.

“과거에는 모양을 중시했습니다. 일본에서 그랬거든요. 하지만 요즘엔 정석이 파괴되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실전을 중요시합니다. 바둑격언에 ‘빈삼각은 악형이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요즘은 그런 빈삼각까지 둡니다.”

그만큼 창의적인 바둑을 둔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다면 원점에서 물어보자.

- 바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여기서 그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펼쳐 둥근 모양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이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조각가가 조각을 하듯 반상 위 361점에 한 수씩 두어 작품을 만드는 거죠. 문제는 만들어놓고 늘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이기고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실력과 승부는 다른 것이거든요.”

-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혼자만 잘 두어서는 안되겠네요.

“그렇죠. 흑백 모두 실수 없이 둬야 합니다. 서로가 완벽하게 둔다해도 6집반이라는 덤이 있기 때문에 승부는 가려지거든요. 어느 대목에선가 한 쪽에서 승부수를 던지고 그것으로 승패가 갈리는 한 판의 바둑, 그런 명국을 두는 게 제 바둑인생의 목표입니다.”

- 그 파트너로는 누구를 꼽고 있나요.

“역시 이창호 사범입니다.”

- 조훈현 9단과는 어떻습니까.

“조 국수님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세계 최강자 중의 한 명이죠. 저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분이기도 하고요. 요즘엔 연세가 있다보니 체력적인 측면도 있고….”

- 바둑에서 최고조의 나이는 몇살로 보는 건가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지금 제가 좋은 때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절정은 분명 아닐 것이라고, 또 아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정인지 아닌지 지금은 알 수 없다는, 역시 프로다운 대답이다.

- 바둑이 오는 11월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이 되었잖아요. 바둑을 스포츠로 분류할 수 있는 건가요.

“사실 좀 애매하죠. 바둑을 예술이라고도 하고, 도(道)라고도 하잖아요.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게 또한 바둑의 매력입니다. 체력이 필요하다고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좀….”

바둑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3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남녀단체전 각 1개와 혼성페어전이다. 남자단체전은 이창호·이세돌 국수 덕분에 금메달이 유력하지만 남녀 두명이 번갈아가며 두는 혼성페어전은 누가 출전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 페어전에 출전할 용의는 없나요.

“당연히 나가고 싶죠. 페어전은 일종의 이벤트 같은 거잖아요. 제가 과거 페어전 이벤트에 나가 우승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페어전은 파트너와 호흡이 잘 맞아야 해요. 그래서 석달간 합숙훈련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석달 일정을 모두 취소할 수는 없잖아요. 한달까지는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은 곤란하다고 말씀드린 상태입니다.”

- 아시안게임에 앞서 바둑홍보 차원에서 중국의 구리 9단과 이세돌 9단이 ‘세기의 10번기’를 치른다는 보도가 지난 5월 있었습니다. 성사만 된다면 바둑 팬들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경기일 텐데요, 그후 어떻게 되었나요.

“글쎄요. 그 경기를 치르는 데 동의한다고 사인을 했는데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아마 스폰서를 못잡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시간상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세기의 10번기는 당대 최고의 고수들이 바둑을 10판 두어 4판 이상 진 쪽이 이긴 쪽에 두 점을 깔게 되는 치수고치기 경기다. 관전자에겐 이보다 더 흥미로울 수 없겠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에겐 자칫 하수(下手)로 전락할 수도 있는 피말리는 싸움이다. 경기 자체가 웬만해서는 성사되지 않는 이유다.

- 꼭 아시안 게임 앞에 치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성사되었다 해도 치수고치기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만약 지금이라도 치수고치기 경기를 하자고 하면 할 용의가 있나요.

“저야 언제든 오케이입니다. 위험부담은 있지만 그만큼 재미있을 테니까요.”

- 역시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네요.

“저는 바둑판 앞에 앉으면 언제나 즐겁습니다. 짜릿한 쾌감이 느껴지죠. 그런 즐거움이 없으면 프로생활 못할 겁니다.”

- 프로기사들은 바둑 한 판 두면 체중이 2~3㎏ 빠진다는 말이 있던데, 안그런가요.

“중요한 대국은 그보다 더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체중 줄어드는 게 대국하면서 에너지를 소진한 때문이 아닙니다. 대국을 앞두고 신경이 쓰여서 잠도 못자고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기 때문이죠.”

- 그럼 대국 중에는 완전히 몰입하나요.

“그렇지도 않아요. 잡다한 생각도 많이 합니다. 끝나면 뭐할까, 점심은 뭘 먹을까 뭐 그런 생각들이죠.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9단은 어릴 때부터 바둑에 전념해 남들처럼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공식 학력은 중 3 자퇴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초등학교 5학년때 서울로 올라와 프로 기사 생활을 했으니 껍데기 학적일 따름이다. 학교를 안다닌 데 대한 후회나 아쉬움은 없을까.

“서울에 올 때 저는 학업과 바둑을 병행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남몰래 갈등을 좀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나 다른 식구들의 생각은 확고했습니다. 바둑에서 최고가 되는 게 목표였으니까요.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그때 학업을 병행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 학교를 다니지 않아 상식과 교양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나요. 그래서 세상 살아가는 데 불편하다든지 말입니다.

“일반 상식은 사회에서 배우는 게 많아서 그런지 별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책 읽는 데도 큰 문제는 없고요. <어린왕자> <갈매기의 꿈> <파리대왕> 같은 책을 제가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언어는 아쉬움도 있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휴직했을 때 중국어를 배워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바둑계 최고수가 되었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아마추어가 바둑 실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마디 강습을 부탁했다. 조금 생각한 끝에 돌아온 대답을 이랬다. 비단 바둑에만 통용되는 말은 아닐 것 같다.

“정답은 없습니다. 일단 많이 두어야 하고, 그 바둑을 자기보다 잘 두는 고수에게서 복기지도를 받는 게 지름길입니다. 복기를 통해 잘못을 깨우치지 못하면 한치도 나아지기 어렵습니다.”


■이세돌은 누구
12살 때 프로 입문…거침없는 언행으로 파란도

이세돌(李世乭)이 12살 때 프로에 입문,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했을 때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돌로 세상을 지배하라고 아버지가 이름을 세돌이라고 지었다잖아. 대단한 아이가 나왔어.” 하지만 이는 꿈보다 해몽이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긴 했지만 세돌은 둘째 아들 차돌에 이어 세번째 아들에게 붙인 평범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세돌은 집에서 바둑을 배웠다. 전남 목포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신안군 비금도로 이사간 아버지 이수오씨(98년 작고)는 아마 5단의 실력으로 3남2녀의 자녀에게 모두 바둑을 가르쳤다. 장남 상훈씨는 현재 프로 7단, 누나 세나씨는 아마 5단이다. 그중 막내 세돌이 아버지 눈에 가장 들었다고 한다. 5살 때 아버지가 농사지으러 나가며 바둑 사활문제를 내주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다 풀었다”고 소리쳐 아버지를 기쁘게 했다. 이세돌은 “그때 문제풀이책 뒤에 정답이 나와 있었는데 그 나이에 끙끙거리면서도 답을 들춰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다”고 말한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자 아버지를 꺾는 실력이 됐고, 세계 어린이바둑대회에 나가 우승을 했다.

11살이 되자 아버지는 세돌을 서울의 권갑용 7단 도장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곳에는 이미 형 상훈이 바둑수업을 받고 있었다. 권 7단은 세돌의 바둑에 대해 “너무 빨리 수를 읽는 탓에 손이 쉽게 나가는 경솔함만 빼면 최고였다. 쇠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한 수를 자주 선보였다”고 평했다. 결국 1년 만에 입단에 성공했고, 이는 조훈현(9살), 이창호(11살)에 이어 세번째 최연소 기록이었다.

신인 기사 이세돌의 행보는 종종 바둑계 상식과 관행에서 벗어나 파란을 몰고 왔다. 한 예로 프로기사가 승단을 하려면 대국료도 거의 없는 바둑을 10판씩 두어야 했으나 이세돌은 이를 거부했다. 논란 끝에 결국 세계대회 우승자는 승단대회를 거치지 않아도 최고 단계인 9단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만들어졌고, 그는 3단에서 곧바로 9단이 됐다. 지난해에는 다른 기사들이 모두 동의한 기보저작권의 한국기원 위임을 혼자 거부하고 한국리그에도 출전하지 않다가 기사회로부터 징계를 받자 휴직계를 내고 한동안 바둑계를 떠나기도 했다. 휴직기간 중 자신이 둔 명승부 대국 9판을 회고하면서 해설하는 책 <이세돌 명국선>을 누나 세나씨와 함께 정리해 최근 출간했다. 2006년 결혼해 다섯 살 난 딸을 두고 있다.


◇ 이세돌 약력

△1983년 출생 △1995년 입단(12세)

△2003년 9단 승단

△2000, 2002년 바둑문화상 최우수기사상 수상

△2007, 2008, 2009년 바둑대상 최우수기사상 수상

△2000년 제5기 박카스배 우승, 32연승 기록

△2003년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제16회 후지쓰배 우승

△2009년 최다연속 국내 랭킹 1위(15개월 연속)

△2009년 6월 휴직 △2009년 12월 복직

 

△현재까지 세계대회 11회 우승 및 국내타이틀 다수 획득

 

https://m.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1009062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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