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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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206/사이버오로] 新기사론/ '바둑신동' 김지석 (1)

교선생 2018. 2. 4.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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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갈 때까지 김정열 원장에게 배우던 지석은 오규철 9단에게도 10개월가량 집중조련을 받았다. 오규철 9단은 “속도나 기재를 타고났다. 수를 아주 빨리 보고 사활 묘수가 밝다”며 한마디로 “굉장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스승 임선근 9단이 ‘참 안 는다'고 한탄할 정도로 지체를 보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연구생이 되긴 하였으나 서울에서 2년 넘게 있는 동안 지석의 바둑은 연구생 8~9조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수준에 그쳤다. 자연 신동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졌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현현연구소에서의 수업은 주로 연구생 형들이랑 바둑을 두는 형식이었다. 그 시절을 김지석 은 이렇게 떠올린다. 


“처음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은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바둑이 별로 재미없었고 노는 게 더 좋았다. 너무 어렸을 적부터 바둑을 해서인지 다른 친구들과 뛰놀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호성 씨의 증언은 좀 심각했다. 어린 나이에 보내서인지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일종의 왕따를 당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아이가 고집도 세고 말귀도 잘 못 알아듣는 나이다보니 선배들에게 고분고분했을 리 없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화장실에 집어넣고 불을 꺼버리는 이지메도 당했던가 보다. 겁이 많은 애가 밀폐된 공간에서 1시간 이상 눈물범벅이 된 경험은 악몽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어느 학원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지석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여섯 살 때 형 조상연 6단을 따라 일본에 건너간 조치훈 9단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조치훈도 놀기만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였고 사형들에게 이불을 덮어씌우는 멍석말이 이지메를 당한 뒤로는 성인이 될 때까지 전등을 끄고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석은 어린 마음에도 자기 뒷바라지를 위해 가족이 광주와 서울에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둑이 싫었어도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중간에 그만 두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주위의 기대가 워낙 커 속마음조차 표현할 수 없었다.  결국 연구생  9조로 내려앉던 초등 3학년 때 광주로 내려갔다. 내려가선 한달 만에 10조로 또 주저앉았다. 안타깝게 바라보던 아버지는 10조에서도 탈락하면 바둑을 접자고 아이와 다짐했다. 


어린 아이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조훈현 9단이 다시 지석을 테스트해본 뒤 의아해했던 원인이 이것이었다.


지석은 처음 바둑을 배웠던 광주의 바둑학원을 다시 찾았다. 또래가 많아서인지 그곳은 그냥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연구생 리그에 참여했고 4~5조까지 치고 올라가자 다시 보따리를 싸들고 상경해 권갑용바둑도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3년 만에 입단했다. 

                      

스승 권갑용 7단의 처방은 어린 천재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방향을 잃고 표류한 정도가 어떠하였는지 여실히 느끼게 한다.


"지석이가 어린 나이에 매스컴을 타고 신동으로 뜨다보니 또래 경쟁자 집단에서는 오히려 여기저기 미움받는 형이었다. 내게 왔을 땐 바둑이 병이 들어 완전 망가져 있었다.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했고 특별관리가 필요했다. 당시 우리 도장에서 뜨는 애라면 동갑내기 강동윤이 있었고 선배로는 이영구, 백홍석, 진시영이 있었다. 윤준상도 실력이 늘어 마귀 수준이었다. 지석이가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할 때 동윤이나 준상이는 거의 무명이었으니 지석이네가 몸이 달았을 것이다.


무조건 바둑만 두게 하는 건 아니다 싶었고 실전 위주보다는 기초 체계를 다잡는 것이 급선무라 진단했다. 애들이 대회서 성적 낸다고 다는 아니다. 지방서 천재다 신동이다 하다가 기초를 다져야 할 시기에 제대로 다지지 않고 겉멋에만 치우쳐 소리 없이 죽어가는 천재가 적지 않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세돌이처럼 스타일에 타격을 주면 상처 받아 개성과 색깔을 잃는 타입이 있고 묵묵히 지켜보며 잘한다 잘한다 해줘야 더 잘하는 타입이 있는데 지석이는 카리스마로 다룰 타입이었다. 


계산이 굉장히 빨랐고 상상력이 뛰어났다. 제시하는 대로 따라오며 놀라운 소화력을 보여 놀랐다. 잠재력과 폭발적인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에 당시에는 일부러 대회에 안 내보냈다. 지석이는 정통파다. 바둑 구질이 굉장히 좋고 털끝만한 것을 물고 늘어져 (공격으로) 바둑을 압도하는 능력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수읽기에 관한 한 현존 기사 중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우리 도장에서 낸 [귀수마수]란 고난이도의 사활집이 있는데 중국의 구리와 최철한이 55%, 이세돌이 65%쯤 정답률을 보인데 비해 지석은 그 이상을 풀어냈다. 가장 셌다.


솔직히 공부량이나 파고드는 정열 면에서 원생 때 공부가 끝이라 할 만큼 프로가 되고 나서는 그때만큼 파기 힘든 게 사실이다.  내가 보기엔 지석이나 박정환의 공부량은 대단했다. 둘은 아마 미래의 라이벌이 될 것이다. 바둑계는 지석이 같은 애가 커야 이창호처럼 또 얘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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