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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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17/사이버오로] 이긴자는 남고 진자는 떠나지만... +커제에 대한 단상

교선생 2019. 2. 12. 11:11


▲ 패배 이후 커제 9단의 동선을 찍었다. 참으로 맛이 없었을 라면을, 기자가 보기엔, 참말 맛있게 먹는 모습이었다.



커제 9단을 보다 보면 ‘귀여운 악동’을 연상케 한다. 톡톡 튀되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성, 시원시원 거침없는 언변(그렇지만 독설은 아닌)과 기묘한 행동, 분명 묘한 캐릭터인 것만은 맞다. 타고난 성격에서 우러나는 것이건 자신감에서 기인하는 것이건 바둑팬들은 실로 오랜만에 ‘스타성’이 철철 넘치는 승부사를 만났다. 


강동윤 9단에게 지고 난 뒤의 행동도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다. 한참 복기를 하고 그래도 아쉬웠는지 기록자석에 앉아 사이버오로에 저장된 기보를 한참 검토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기사에게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고선 대다수는 못내 아쉬운 얼굴로 대국장 밖으로 나가든지 그것도 아니면 애초부터 복기도 하는 둥 마는 둥 상기된 표정으로 서둘러 자리를 떠나기 마련, 자기바둑을 두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자기도 모르게 이런 식으로 뿜어져 나오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커제의 다음 행보는 좀 달랐다. 문득 배가 고팠는지 천연덕스럽게 간식 테이블에 놓인 컵라면을 하나 부욱 따서 온수를 채운 다음 온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다시 두껑을 닫고 나무젓가락을 가지런히 위에 얹는다. 그러고선 면발이 익을 때까지 다시 복기하는 기사들 판으로 와 지켜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부리나케 돌아가 맛있게 라면을 먹는다. 후르룩 후르룩 면발을 빨아들이는 소리도 요란하게. 남의 눈은 의식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정면에서 라면 먹는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기자정신 발휘’에도 정도가 있기에 차마 그렇게 모질게까지 할 수 없었다.) 


....


오늘 한국바둑은 강동윤의 분전으로 흡사 ‘백만대군’처럼 다가왔던 커제공습을 막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 성장기세대로라면 커제의 공습은 향후 몇 년간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다. 한국바둑을 이끌던 간판스타 이세돌이 서른 중반에 접어들며 전성기를 지난 듯하고, 김지석이 정상에 선다 싶다가 하락세에 빠졌는데 세대교체의 선봉장인 박정환은 여전히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엉거주춤한 사이에 커제바람이 느닷없이 불어닥쳤다. 필요 이상 불안하고 초조해진 건 이 탓이다.


일단 LG배 대진표에서 커제는 8강에서 멈췄다. 그렇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기록이 실력을 말해주고 있다. 커제는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강자가 아니다. 국내외 프로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처럼 커제가 크게 이름을 떨치고 있지 않을 때에도 머지않아 가장 껄끄럽고 가장 대적하기 어려운 ‘괴물’이 될 것이란 사실을.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며 승부사는 일합을 겨루지 않아도 감으로 안다. 커제는 이미 준비된, 예고된 승부사였다. 지난 삼성화재배 준결승 3번기에서 한국의 프로들은 이세돌 9단이 이겨주기를 ‘기대’ 했지 ‘이긴다’고 장담한 기사는 거의 없었다. 대놓고 입밖으로 발설할 수 없었을 뿐이다. 승부의 기세란, 흐름이란 이런 것이다.


모 9단이 말했다. 이창호시대 이후 수읽기가 깊으면서 타고난 감각을 가진 기사로 이세돌과 구리, 커제, 그리고 박정환을 꼽는다고. 앞의 3명과 구분하여 ‘그리고’란 접속어 다음에 박정환을 거명한 이유는 ‘임기응변’이 뛰어나냐 아니냐의 차이다. 


이세돌, 구리, 커제는 수읽기 자체도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센데 여기에 천부적인 감각, 맹수처럼 번뜩이는 감각이 빛나고도 빛난다. 감각은, 그렇지만 때로 불확실하고 모호하기도 한 것이어서 최선이 아닐 때가 있다. 이럴 때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의 길로 잡을 수 있는 임기응변이 절실한데, 바로 이 지점에서 박정환은 뒤처진다. 알기 쉽게 말하면 앞 3명의 바둑은 초반에 불리하더라도(설령 망했더라도) 그냥 지는 법이 없다. 지더라도 상대를 엄청 고생시킨다. 이에 견주면 박정환의 바둑은 그대로 지는 편이다. 모 9단은 물론 3명과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그렇다는 단서를 붙였다.


종반 커제의 1집반 패국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검토실에서 지켜보던 김영삼 9단에게 물었다.

“커제의 약점이 끝내기인가 보네요?”

“다 센데 상대적으로 끝내기가 그렇죠.”

“끝내기는 비교적 타고 나는 재능보다는 경험이 쌓이면 느는 부분이니, 아직 나이 열아홉, 더 강해지겠군요?” 

“초중종반을 놓고 볼 때 상대적으로 가장 빨리 늘 수 있는 부분이 끝내기죠. 박영훈을 전담교사로 붙여주면 단기간에 늘 텐데...(웃음)” 


마침 일주일 뒤 몽백합배 4강에서 박영훈 9단이 커제와 마주한다. 종반의 박영훈, 끝내기의 박영훈이니까 어쩌면 커제가 가장 곤혹스런 스타일일 수 있다. 여기서 커제가 또 진다면 가팔랐던 기세가 수그러들어 당분간 주춤댈지 모르지만, 중국바둑이 커제 이후 2000년대 태생의 수많은 영재들이 대기하고 있다고는 하나 커제만한 천재가 당장 안 보이는 지금, 잠시 지체할지언정 주머니속의 송곳은 반드시 삐져나온다.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https://cyberoro.com/news/news_view.oro?num=521015&div_no=31




나도 커제에 대해서는 애증이 교차한다.

넘치는 캐릭터성과 시선을 사로잡는 발언들, 압도적인 실력은 분명 젊은 시절의 세돌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작년 농심배 최종국 사건이라던가 페어바둑 대회에서 위즈잉에게 했던 짓이라던가...... '개성 있네' '어려서 그렇지' 라고 퉁치기에는 인성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자꾸 툭툭 튀어나온다.

그나마 나는 중국어가 서투른 외국팬이다보니 커제의 악행이 피부로 와닿지는 않는 편인데, 웨이보에는 커제라면 이를 득득 가는 중국 친구들이 좀 있다. (그들이 중국팬 중 다수라는 건 절대 아니고)

결국 실력이 깡패인 승부세계에서 그에게 누가 대놓고 뭐라고 하겠느냐마는ㅋㅋㅋㅋ 

사람 좋은 구리는 이런 걸로 쓴소리 할 캐릭터는 아니고, 차라리 후야오위가 웨이보 칼럼 등으로 좀 힘내고 있네


한편으로는 한 3년 전쯤에 맹ㅁ국수님이 했던 저주(?)도 생각난다.



두 달 전에요.


가결의 주둥이 vs. 15년 전의 이세돌의 주둥이의 차이를 밝히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만, 다 부질없다. 나만 피곤한 짓이다. 그냥 말았습니다.(그리고 깊은 잠수...)


 


다 지난 시점이지만 저의 당시 판단을 확인하는 바, 둘의 차이는 바로 '맹랑함의 단순함' vs. '참을 수 없는 메스꺼움'입니다.


 


15년 전의 이세돌, 맹랑했죠. 비판도 많이 받았죠. 당시 비판하는 분들의 나름의 선의, 평범한 선의에 저는 토 달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면 저도 같은 입장이었으니까요.


 


다만, 당시에 이세돌이 ‘단순히 맹랑한 어린 녀석’으로 그치는 이유는,


이세돌은 마효춘이든 이창호든 조훈현이든


‘다 필요 없어, 내가 까겠다면 조또 전부 다 까는 거야’ 이런 물불 안 가리는 당당함입니다.


그런 식의 맹랑함은 설령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긴 하지만, 욱~ 씨바... 속이 울렁거리게 메스껍진 않죠. 차라리 시원은 하잖아요.


 


허나 가결은 ‘타국 사람인 세돌은 실컷 까도 되니까 아주 실컷 까고, 같은 나라 사람인 고력형아는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으니까 까지 말자. 이런 영악함입니다.


(사람 바꿔 얘기하자면 만약 가결의 현재를 이세돌이라는 캐릭터로 바꾼다 했을 때, 즉, ‘97년생 가세돌’이 고력에게 6연승, 누구에게 몇 연승...‘가세돌’은 이미 졸라 까고 있을 겁니다. 고력? 좆도 없어, 머시기? 다 필요 없어, 내가 세계일인자여... 옛날에 이세돌이 이창호 비롯하여 다 깠듯이....


근데 현실의 가결은 설령 고력에게 60연승을 한다 해도, 언감생심 절대 고력 안 깝니다. 차라리 달나라 토끼새끼를 깔지언정...


앞으로도 가결이가 같은 국적의 棋士를 깔아뭉갤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바로 가결이라는 인간입니다.)


 


이러한 영악함의 메스꺼움, 제가 가결이라는 인간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恶心(惡心악심), 즉 구역질입니다. 저는 얘에게 그러한 토 나옴을 느낍니다.


 


(같은 맥락으로,


이세돌과 가결을 묶어서 둘은 어차피 같은 부류다, 이런 식의 도매금식 매도에 저는 진한 불편함을 느낍니다. 둘은 한편 같되, 절대 같지 않아요)


 


나머지 하나의 차이는, 그 ‘맹랑한 이세돌’은 자신의 나이와 함께, 이창호라는 反射鏡(반사경)의 존재와 함께, 그 맹랑함이 차츰 부드러워졌다는 겁니다. (물론 아직도 조금 남아 있긴 하죠)


 


그러나 장담컨대 가결이 얘는 저 구역질나는 싸가지를 아주 오래도록 가져갈 겁니다. 얘는 저 승질을 못 버려요. 즉, 얘는 세돌과는 좀 다른 길을 걸어갈 거라는 얘기죠.




출처: https://contrite.tistory.com/entry/이즈음-중국-바둑계-분위기-알파고 [맹물국수]



내가 여기에 백프로 동의한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이가 들면 어떻게든 나아질 거라고 믿고 있다 혹은 믿고 싶다. 하지만 내가 커제라는 기사에게 거부감을 느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이와 일치한다. 

커제가 상대방의 국적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해보려면 또 이야기가 길어지는데ㅋㅋㅋㅋㅋ 이 녀석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를 언젠가는 더 정리된 글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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