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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25/경향신문]‘섬소년, 태풍을 몰고 오다’ 천재기사 이세돌

교선생 2020. 1. 5. 20:38

 

천재란 신이 선사하는 위트이다. 그들의 재능은 시대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축복이다. 그들의 행동은 일반인의 문법을 벗어난다. 엉뚱하다. 때로 천재들은 백치같은 면모를 선보인다. 비범한 존재지만 평범한 일에는 터무니없이 서투르다. 묘한 엇박자다. 엉뚱함으로 포장된 축복. 천재성과 백치미의 낯선 동거. 신의 고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신의 미소는 보통 사람들에겐 난해하다. 천재들이 종종 시대와 불화를 빚는 이유다.


신세대 천재기사 이세돌 3단. 요즘 그는 태풍이다. 그 위력은 예상을 웃돈다. 한반도를 휘저으며 중국과 일본까지 간접영향권에 두고 위협한다. 세계 바둑계의 판도가 뿌리째 뒤흔들리고 있다. 이창호도, 조훈현도, 유창혁도 나가떨어졌다. 근래에 없던 초특급 태풍이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진로를 지켜보고 있다.

성급한 사람들은 혁명을 얘기한다. 이창호의 장기집권이 끝나가고 있다고 쑥덕거린다. 권력누수의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영웅 탄생 10년 주기설이 항간에 파다하다. 이창호시대가 가고 이세돌시대가 온단다! 목소리는 낮췄지만 소문은 바람보다 빠르다.

한국 바둑계가 모처럼 얻은 걸출한 이름 이세돌.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당차다는 소리도 있고, 건방지다는 소리도 있다. 오만하다는 비판도 있고, 스타 기질이라는 비호도 있다. 다만 조훈현·이창호의 대를 잇는 기재(棋才)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우리는 이런 엇박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는 과연 우리 시대의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이세돌 3단에게 물어봤다. “만일 역사 속의 고수들이 환생해 이3단과 대국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스트 바둑왕에서처럼”. 그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글쎄요. 별로 질 것 같지 않은데요. 초읽기도 없던 시절에 그 정도 수준의 바둑을 뒀다면요”. 당당하다. 내숭은 없다. 신세대는 이런 것인가. 그래서 또 물었다. “월드컵때 길거리 응원은 해봤나”. 엉뚱한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오. 힘들잖아요.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면 더 좋을 수도 있는데”.

천재는 늘 이런 식이다. 그들은 미래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간다. 과거의 잣대로는 그들을 재기 어렵다. 새로운 유형의 천재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세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그의 과거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이세돌은 섬소년이다. 고향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 사람은 태어난 곳의 정(精)을 물려받는다고 한다. 산에서 난 사람은 산처럼 우뚝하고 바닷가에서 난 사람은 바다처럼 깊다. 서해의 외딴섬에서 태어난 이세돌. 세상에 눈뜨자마자 그의 시야를 가로막아선 수평선. 그걸 물어뜯으려는 듯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맹수처럼 달려드는 파도. 이세돌의 바둑이 야성으로 번득이고 성난 파도소리로 으르렁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3남2녀의 막내인 이세돌이 바둑을 배운 것은 다섯살 때. 아마 3~4단의 고수였던 아버지로부터다.


바둑을 배운 방식은 특이하다. 농삿일을 나가는 아버지는 아침마다 막내에게 사활문제를 내줬다. 저녁이면 그날의 숙제를 점검했다. 독특한 수업방식에 효과도 독특했다. 글자도 덜 깨우친 꼬마녀석이 바둑은 쑥쑥 깨우쳐 갔다. 2년만에 아버지와 아들은 맞바둑이 되었다. 그 무렵 세돌은 ‘이붕배’ 어린이 바둑대회에서 처음 우승해 하늘이 내린 기재를 주위에 선보인다. 작은 섬에 가두기에는 아까운 재주였다. 큰물에서 커야 한다. 섬소년 이세돌은 서울로 바둑유학을 떠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권갑룡 도장에서 사범을 맡고 있던 둘째형 이상훈(현 프로 3단)이 그를 돌봤다. 그래도 철부지 시절 부모 곁을 떠난 외로움은 컸다. 키가 자라는 만큼 외로움도 함께 자라났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그를 강철같은 승부사로 단련시킨다.

1995년 이세돌은 고시보다 어렵다는 프로 입단에 성공한다. 12세 4개월의 나이였다. 당시로서는 조훈현(9세 7개월), 이창호(11세 1개월)에 이은 역대 3위의 최연소 기록이었다. 갈수록 치열해진 입단 경쟁을 감안하면 조·이 사제에 결코 뒤지지 않는 기재임을 기록으로도 입증했다.

프로 입단은 공인으로서의 출발이다. 데뷔 후의 그의 성적은 공식기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요 약력을 보면 주위의 기대대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 행간에는 아픔과 시련도 숨어있다. 작년 초 월간 바둑지에 실린 ‘바둑 한냥, 사람 서푼’이라는 글도 그중 하나다. 재주는 뛰어나지만 인간성은 모나다는 요지였다. 이후 이세돌은 주위로부터 세상물정 모르는 오만한 천재라는 오해를 받게 된다. 올해 한·중 신인왕전 제2국에서의 때이른 투석도 그런 선입견을 증폭시켰다. 이세돌은 과연 건방진가. 한국 바둑의 법통을 잇기에는 모자라는 그릇인가.

한 인물을 제대로 보려면 소문은 걷어내야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이세돌은 여리다. 목소리는 변성이 덜 된 듯 가늘고 손은 수양버들처럼 곱고 길다. 그는 지금 소년에서 청년으로 가는 경계에 서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가장 슬펐다고 말할때는 영락없는 소년이다. 하지만 전투에 관한 한 누구와 붙어도 자신있다고 말할때는 듬직한 장부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다. 그러나 눈빛 속에는 표범 한마리가 살고 있다.

소문과 진실 사이, 오만과 편견 사이. 그 중간지대에서 이세돌은 변하고 있다. 주위의 시선도 시간이 흐르면 변할 것이다. 세월은 바다를 산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세돌은 다음달 3일 열리는 후지쓰배 결승에 올라 있다. 대회가 끝나면 모든 것은 또 달라질 것이다. 신의 미소는 이번엔 어떤 짓궂은 빛깔로 포장되어 있을까.

▶이세돌 주요 약력

▲1983년 3월2일 전남 신안군 비금도 출생

▲1995년 조한승과 함께 프로 입단

▲2000년 전반기에 32연승 기록

▲2000년 박카스배·배달왕전 우승

▲2001년 LG배 세계기왕전 준우승(이창호 9단에게 2대 3 패배)

▲2002년 신인왕전 우승

▲2002년 KTF배 프로기전 우승

▲2002년 후지쓰배 이창호 9단 누르고 결승 진출

▲2002년 왕위전 도전권 획득

▶이세돌 19문 19답

◇키?

○172㎝

◇체중?

○57㎏

◇혈액형?

○A형

◇별명?

○불패소년. 쎈 돌

◇취미?

○스타크래프트 등 인터넷게임

◇지금 주머니 속의 돈은?

○30만원 가량

◇하루 수면시간은?

○7시간 정도. 일어나는 시간은 대중없음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

◇좋아하는 동물은?

○곰

◇좋아하는 음식은?

○보신탕

◇싫어하는 음식은?

○피자 등 느끼한 것은 질색

◇좋아하는 연예인은?

○SES. 바다, 유진 둘 다 좋다

◇좋아하는 여성형은?

○톡톡 튀는 여자. 현모양처형은 갑갑해서 별로임

◇해외여행 간다면?

○동남아. 유럽보다는 발전되지 않은 나라를 보고 싶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로마인 이야기 제3권

◇가장 기억에 남는 바둑은?

○2000년 12월에 둔 배달왕전 제5국. 유창혁 사범에게 극적으로 역전승했다

◇가장 슬펐을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역사상 훌륭한 기사 3인을 꼽는다면?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조훈현. 이창호(누구나 첫 손가락에 꼽는 우칭위안(吳淸源)을 뺐다)

◇1년 후의 목표는?

○세계 타이틀 2~3개 따는 것

/김태관기자 kt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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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소년, 태풍을 몰고 오다’천재기사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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