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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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nn/조선일보] 이세돌·구리 ‘아버지의 추억’

교선생 2020. 1. 7. 16:40

이수오(李壽五)씨는 기인(奇人)이었다. 바둑천재 이세돌의 아버지인 그는 44년 생으로 광주교대를 나왔다. 젊은 시절 목포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식솔들을 이끌고 고향인 비금도(飛禽島)로 유턴, 98년 세상을 뜰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아마 5단의 바둑실력과 함께 천문, 역사, 족보 등에 두루 해박한 인텔리였다.

 

 말년의 그는 막내 세돌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다. 3남 2녀의 자녀 모두를 도시로 진출시키고 유일하게 세돌이만 곁에 남긴 채 바둑을 가르쳤다. 그의 바둑 교육방식은 특이했다. 아침에 농사일을 보러 나가기 전 사활(死活)문제를 내주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숙제를 점검하는 식이었다.

 

 전직 교사이자 현직 농부였던 이수오씨의 막내사랑은 끔찍했다. 다섯 살 막내동이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치는 식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곱 살이 채 안돼 부자(父子)는 호선(互先)바둑이 됐다. 바둑돌 잡은 지 불과 2년 만에 ‘군기(郡棋)’ 소리를 듣던 아버지를 따라잡은 것이다.

 

 세돌은 91년 제12회 해태배에 나가 우승, 전국 어린이대회를 제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우승할 수는 없었다. 워낙 재주가 넘쳐 손이 너무 빨리 나오는 바람에 다 이겨놓았던 바둑을 패하기 일쑤였다. 이수오씨는 그럴 때마다 막내의 얼굴을 외면한 채 종아리에 사정없이 회초리를 내리쳤다.

 

 이수오씨의 장남 이상훈이 90년 15세의 나이로 프로기사가 됐다. 세돌보다 8살 위인 상훈은 서울에 바둑 유학을 가 있었다. 상훈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무섭게 성장한 막내 동생의 실력에 전율하곤 했다.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장남에게 “막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라”는 명이 떨어졌다. 세돌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세돌은 그때부터 8살 위의 형 이상훈의 보살핌 속에 권갑룡 바둑도장에 똬리를 틀었다.

 

 11살 때이던 94년부터 입단대회에 나간 이세돌은 도전 네 번째 만인 95년 여름 프로가 됐다. 12세 4개월만의 기록적인 나이였다. 군 입영 날짜를 받아놓고 좌불안석이던 이상훈은 한숨을 돌렸다. 7월 2일 동생의 입단이 확정된 이틀 뒤인 7월 4일 형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입영열차에 몸을 실었다.

 

 세돌이 물 만난 고기처럼 바둑계를 휘젓기 시작할 무렵인 98년, 이들 형제 앞으로 아버지의 부음이 전해져 왔다. 청천벽력은 아니었다. 막내의 상경 직후 불치의 병을 얻었던 이수오씨의 죽음은 웬만큼 예견되던 터였다. 그렇더라도 충격은 컸다. 3년 전 조혼(早婚)한 이세돌은 요즘 3살짜리 딸의 재롱에 깜빡 죽다가도, 문득 상념에 빠져들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 집안은 매년 3월 2일이 되면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 선친 이수오씨의 제삿날인 동시에 이세돌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아버지를 추억하고, 세돌의 빛나는 무훈(武勳)을 격려하는 자리가 된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고향 비금도에 집결했지만 요즘은 이 행사를 서울에서 치른다. 대신 홀어머니 박양례(61)씨가 상경한다.

 

 그녀는 서울에 올 때면 여전히 손수 재배한 농산물과 약재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선다. 막내 세돌이네 식구들 먹이기 위해서다. 최근엔 밭에서 딴 배에 각종 약재를 넣은 음식을 잔뜩 부쳐오기도 했다. LG배와 농심배 등 큰 대회가 줄줄이 잡혔다는 얘기를 ‘동네 유지’들로부터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지난 연말 비금도에서 이세돌 대 강동윤의 천원전 결승 2국이 두어졌다. 박양례 여사는 바둑의 ‘바’자도 모르면서도 그 현장에 나타나 5시간이나 머물렀다. ‘이세돌 기념관’ 건립행사를 겸해 내려온 이세돌이 최악의 몸살감기로 간신히 대국만 마치고 올라가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배 승선시간 때문에 그날 부친 묘소에도 못 들리고 상경한 것을 이세돌은 두고두고 죄스러워했다.

 

 중국 바둑의 1인자인 구리(古力) 부자(父子)의 스토리도 많은 바둑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구리는 지난 해 여름 후지쓰배서 우승하고 귀국, 공항에 내리는 길로 부친 묘소를 찾았다. 그리곤 이창호와 치른 결승전 기보를 펼쳐 제단 위에 놓은 뒤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가신지 벌써 435일이 흘렀군요. 아버지께서 그토록 고대하시던 이창호를 이기고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어요.” 그는 부친이 생전에 즐기던 담뱃불을 붙여놓고 봉분에 술도 따르면서 울먹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구리의 아버지 구쥐산(古巨山)은 2007년 5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뇌출혈이라고 했다. 이세돌의 부친처럼 웬만큼 예고된 케이스가 아니었다. 사망하기 불과 1주일 전 온 가족의 축하 속에 54세 생일 파티를 즐겁게 치렀던 아버지였으니 구리의 충격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부친 타계로 구리는 집안의 유일한 남자가 됐다.

 

 구리의 아버지는 충칭(重慶) 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담당과목이 또한 지리였다니 이세돌의 아버지와는 거의 완벽한 ‘동업자’ 격이었다. 구쥐산은 아들이 신동으로 소문을 떨치기 시작하자 6살 되던 해 충칭기원으로 보냈다. 그리곤 아들이 출전하는 대회마다 따라다니며 보살폈고, 기자들의 질문이 나올 때마다 성실히 답변하는 등 둘도 없는 매니저였다.

 

 2007년 초반까지만 해도 눈부셨던 구리의 상승세는 5월 이후 급전직하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읜 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흘리곤 했다. 연패가 거듭되는 가운데 굳게 지켜오던 랭킹 1위 자리에서도 밀려났다. 그의 슬럼프는 거의 1년 가까이 이어지다가 후지쓰배 제패 이후 다시 옛 위용을 찾았다. 현재는 2위와 더 큰 점수 차로 랭킹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구리의 어머니 장중쉰(張中遜)은 남편이 세상을 등진 후 남편을 대신해 자주 외아들 구리의 대국장을 찾는다. 대국 후 아들이 인터뷰하는 동안 내내 흐뭇한 표정으로 옆에 붙어 앉아있곤 한다. 기자들이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구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는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장중쉰 여사는 오는 23일부터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서 시작되는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에 맞춰 내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세돌과 달리 내조자가 없는 아들을 현지에서 보살펴주고 싶은 모정 때문일 것이다. 55년 생으로 은행에 근무하다가 50세가 넘으면서 퇴직했다는 정도 외엔 그녀에 관해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

 

 이세돌과 구리.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닮은꼴인 둘 간의 대결이 곧 시작된다. 역발산(力拔山)의 승부사들도 그 괴력의 원천은 가족 간의 사랑이란 사실, 세상 없는 천재들이라도 부모들의 헌신적 보살핌 없이는 대업(大業)에 이를 수 없다는 상식을 그들을 통해 확인한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승부의 이면(裏面)이 뜨거운 가족애로 뭉쳐있다는 사실 또한 새삼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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