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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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03/경향신문] 이세돌 승리로 ‘세기의 10번기’는 끝났지만… 한중 싸움은 다시 시작된다

교선생 2020. 2. 18. 12:46

 

“싸움은 끝났다. 그러나 승부는 이제부터다.”

한국 바둑의 얼굴 이세돌과 대륙 바둑의 적장자 구리가 벌인 ‘세기의 10번기’가 지난달 28일 중국 충칭에서 치른 제8국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두 사람의 명예와 한·중 양국의 자존심이 걸린 이번 대결에서 최후의 웃는 자는 이세돌이었다. 6-2 완승. 그는 이번 승리로 세계바둑사에 한 획을 남기게 됐다. 빛나는 이름으로…. 8억원이 넘는 상금(500만위안)도 손에 넣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승리가 고프다. 10번기 승리를 확정지은 뒤 그가 처음 한 말은 “내 승리가 중국세를 극복하는 신호탄이 되기를 바란다”였다. 이세돌과 구리, 당대 세계바둑계 최고의 라이벌이자 절친인 두 사람의 싸움은 끝났다. 하지만 세계 바둑패권을 놓고 벌이는 한·중 대결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하늘이 내린 두 바둑별

용호상박! 이세돌과 구리를 표현하기에 딱 좋은 말이다. 둘은 1983년 동갑내기다. 1995년 열두 살의 나이로 프로의 문턱을 넘어선 것도 같다. 지난 10여년 동안 각각 한국과 중국의 1인자로 군림했다.

기풍도 비슷하다. 이세돌은 ‘싸움꾼’으로 전투에 능하다. 초반의 불리한 형세를 중반 이후 강력한 전투로 반전시키는 것이 그의 장기다. 그래서 별명이 ‘쎈돌’이다. 구리도 싸움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럽다. 유리한 바둑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무섭게 싸움을 건다. 이 때문에 붙은 별명이 ‘세계 최강의 아마추어’다. “둘의 대국은 멀리서 바둑판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바둑계의 속설이 그래서 나왔다.

둘은 바둑판을 앞에 두고는 ‘최악’의 경쟁자다. 10번기가 치러지기 전 36회 맞붙어 이세돌이 18승1무17패로 근소하게 앞섰지만 1 대 1, 2 대 2, 4 대 4, 6 대 6, 7 대 7, 8 대 8, 9 대 9, 11 대 11, 12 대 12, 13 대 13, 14 대 14 등 무려 11차례 동률을 기록하며 엎치락뒤치락해 왔다. 한·중 10번기가 두 사람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이유다.

하지만 바둑판을 떠나서는 둘도 없는 절친이다. 해마다 수차례 열리는 세계대회에서 낮 동안 치열하게 승부를 치른 뒤 밤에는 술로 더욱 치열하게 맞붙는 일이 흔하다. 그 싸움에 쿵제 등이 잘못 끼어들었다가 ‘전사’하기도 했다.

■ 역사가 그들을 원했다?

이번 10번기는 두 사람이 맞수이자 절친이기에 가능했다.

10번기는 단순한 승부가 아니다. 특히 패자는 바둑사에 씻지 못할 오명을 남기게 된다.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10번기 패배’라는 표현은 프로에게 치명적 상처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승부에서 패해 정상에서 추락하더라도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이세돌), “그와의 대결이 기대된다. 그와는 60살이 될 때까지 반상에서 겨루고 싶다”(구리)며 오히려 대결을 반겼다.

그러나 10번기가 순로롭게 준비된 것은 아니다. 10번기 얘기는 2009년 처음 나왔다. 이듬해에는 한·중 양국이 ‘세계바둑최강전 10번기’라는 대회명의 공문까지 주고받았다. 한·중 양국의 언론은 세기의 대결이라며 온갖 얘기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 무렵 구리가 급격히 슬럼프에 빠지면서 대회 성사 여부는 다시 안갯속으로 파묻혔다. 당초 후원을 약속한 기업들이 발을 뺐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이세돌마저 후배들에게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면서 10번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꺼져가던 10번기 불씨를 되살린 것은 중국 가구회사 ‘헝캉’의 오너 니장건(倪張根) 회장이다. 바둑애호가로 지난해부터 몽백합배 세계대회를 후원하고 있는 그는 두 사람의 10번기 얘기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대회 후원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역사가 원하지 않느냐”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진짜’ 후원 배경은 따로 있다는 후문이다.

구리 9단의 팬인 니장건 회장은 2012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마스터스 결승에서 구리가 이세돌에게 두 번이나 반집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친 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10번기에서 붙으면 구리가 이길 거야’라고 생각했다. 즉 구리가 이세돌을 꺾어 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후원하게 됐다는 게 중국 기자들의 귀띔이다.

■ 불붙은 바둑전쟁, 그리고 운명의 전투

구리를 향한 니장건 회장의 ‘지원 사격’은 조용하면서 강했다. 10번기를 중국에서 9차례, 한국에서 단 1회 치르는 데서 그의 응원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구리에게 독이 됐다는 게 바둑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언론과 관계자들의 지나친 관심이 구리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 반면 평소 중국 음식을 잘 먹고 중국 환경에 잘 적응한 이세돌로서는 중국 명승지를 돌며 벌이는 승부가 즐거움이 됐다. 이세돌은 오랫동안 중국 갑조리그에서 용병으로 활약하며 중국을 제 안방 드나들 듯하고 있다.

특히 이번 10번기 중 고산지대에서 벌어진 5국 샹그릴라 대국과 7국 티베트 대국을 놓고는 장소 선정을 잘못해 구리가 패했다는 비판이 중국 내에서 일고 있다. 고산지대에서는 산소부족으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실제로 구리는 샹그릴라 대국에서 아마추어 5급도 알 수 있는 곳에서 실수를 범하며 이세돌에게 승리를 헌납했다. 4국까지 2승2패로 팽팽하던 힘의 저울추는 5국에서 이세돌에게로 기울었고, 이후 한 번의 출렁임도 없이 승부가 마침표를 찍었기에 니장건 회장을 향한 중국 언론의 볼멘소리는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듯하다.

이번 10번기에서 먼저 웃은 쪽은 이세돌이다. 지난 1월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치러진 첫 승부에서 이세돌은 흑으로 불계승을 거두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저장성 핑후에서 벌어진 2국에서도 이세돌은 백 1집반 승을 거두며 확실히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구리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쓰촨성 청두에서 벌어진 3국에서 백 불계승을 거둔 구리는 이세돌의 고향인 신안군 증도에서 펼쳐진 4국마저 가져가며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기분 좋게 스타트를 끊었던 이세돌이 자신의 안방에서 무릎을 꿇으며 추격을 허용하자 분위기는 이내 반전됐다. 특히 이 무렵 다른 기전까지 합해 구리가 이세돌에게 4연승을 거두면서 10번기 전체의 주도권을 잡는 듯했다.

하지만 구리의 저항은 거기까지였다. ‘운명의 샹그릴라 전투’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유리하던 바둑을 그르친 구리는 이후 와르르 무너졌다. 중국 전국의 바둑팬들이 ‘구리, 힘내요’를 적은 종이를 들고 인증샷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응원의 함성을 보냈지만, 날개 꺾인 구리의 추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세돌 승리로 ‘세기의 10번기’는 끝났지만… 한중 싸움은 다시 시작된다


■ 한국 바둑이 만리장성 넘는 디딤돌 기대

이번 승부는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싸움이었다. 10번기를 치르면서 부쩍 늘어난 두 사람의 흰머리가 이를 간접증명한다. 이세돌의 친누나인 이세나씨는 “요즘 동생을 보면 나보다 흰머리가 많은 것 같다”며 “이제 웃을 수 있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컸다”고 전한다.

구리는 더하다. 지난달 충칭 대결을 지켜본 바둑 관계자들은 “구리의 머리가 반백으로 하얘져 놀랐다”며 “하루아침에 백발이 된다는 말이 그냥 있는 소리가 아닌가 보다”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이세돌은 이번 승리로 8억4000만원을 움켜쥐었지만, 구리는 여비조로 고작 3400만원을 받았을 뿐이다. 속이 쓰릴 만하다. ‘10번기 패배자’라는 오명은 살아생전 안고 가야 할 치욕이 될 수 있다.

중국 바둑계도 충격에 빠졌다. 구리가 이세돌에게 이렇게까지 밀릴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충격은 ‘충칭 대결’의 지역 스폰서로 나섰던 기업이 위약금을 물어가며 유치를 포기한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이번 대회는 니장건 회장 측이 우승상금을 걸고 각 도시에서 지역 행사비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충칭 대회를 맡았던 기업이 “구리의 고향에서 구리가 패배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며 대국 유치를 반납해 큰 소동을 빚었다.

그러나 이번 승부가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을 그어 놓지는 않을 듯싶다. 제8국을 마치고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난 뒤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이세돌과 구리가 러브샷으로 축하와 위로를 나눈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두 사람은 필생의 맞수이자 벗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세돌은 자신의 승리가 한국 바둑이 중국세를 넘어서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 까닭에 10번기 승리의 축하 자리도 이달 중순에 치러지는 삼성화재배 16·8강전 이후로 미뤘다. 지난해 세계대회 정상을 모조리 중국에 내준 치욕을 올해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세돌의 새로운 각오다.

■ ‘10번기’의 유래와 미래
1930년대 일본서 유행한 최고수 간의 대결…‘쎈돌’에 맞설 중국의 구리 대체 카드 없어 다시 보기는 힘들 듯

‘10번기’란 현대식 타이틀 제도가 확립되기 전인 1930년대 말부터 일본에서 유행했던 최고수들 간의 대결 방식이다. 단둘이 10판을 연속 둬서 승부를 가리는 대국 방식으로, ‘치수 고치기’에 많이 쓰였다.

호선(互先)으로 시작해 4 대 0이나 5 대 1, 6 대 2 등으로 4승차가 될 경우 선상선(先相先·하수가 3국 가운데 첫 국은 흑, 둘째 국은 백, 셋째 국은 흑을 갖는다)으로 치수가 바뀌는 게 치수 고치기다.

호선이란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이 돌을 가려서 흑백을 정하고 대국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흑을 쥔 사람은 정해진 만큼의 집을 상대에게 공제한다.

10번기 중에는 ‘우칭위안(吳淸源) 10번기’가 가장 유명하다. 중국 출신의 우칭위안은 일본의 일류기사들과 10번기를 벌여 거의 모든 기사의 치수를 고쳤고, 자존심이 상한 기사는 은퇴를 하기도 했다. 1956년 치러진 우칭위안과 다카가와 가쿠의 10번기를 마지막으로 ‘치수 고치기 10번기’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번 이세돌-구리의 10번기는 ‘치수 고치기’가 아니었다. 무조건 6승을 거두는 사람이 우승상금 500만위안을 독식하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구리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6 대 2의 스코어는 예전 10번기 같으면 치수를 고쳐야 하는 치욕적 결과지만, 이번은 그것으로 승부가 끝났다.

68년 만에 부활해 세계 바둑팬을 흥분시킨 10번기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세돌과 구리를 대신할 만한 한국과 중국의 스타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10번기는 중국의 누군가가 이세돌에게 도전하는 양상이어야 하는데, ‘바둑의 기술이 아니라 싸움의 기술’에서 이세돌을 넘어설 기사가 없다는 사실을 중국 내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세돌 스스로도 “10번기가 다시 열리기는 힘들 것이다. 10번기가 성사되려면 기본적으로 카드가 맞아야 하는데 상대가 없다. 10번기라는 것이 단순히 현재 1인자라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서로 라이벌이어야 하고 쌓은 업적도 비슷해 최소한 세계대회에서 5회 정도는 우승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누가 상대가 되든 자신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더 이상의 10번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032140125&code=980701#csidxfb702d88d1ad33f977fcfb2b6db8a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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