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03nnnnn/엠게임바둑] 이창호 - 이세돌의 LG배 결승전 관전포인트 본문

스크랩

[03nnnnn/엠게임바둑] 이창호 - 이세돌의 LG배 결승전 관전포인트

교선생 2020. 1. 21. 13:24

2001년과 2002년,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은 연속 격돌했다. 두번 모두 혈전이었다.
종가(宗家)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었다. 승부가 끝난 현장은 다 타버린 재와 같았다.

이창호는 두번 다 이겼고 이세돌은 두번 다 졌다. 이세돌은 비록 졌으나 내용은 충실했다. 돌부처라 불리는 이창호조차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길 수 있는 승부였기에 패자 이세돌의 가슴은 더욱 쓰라렸다. 상처가 깊었다.

세월은 잿더미 속에서도 생명을 키워낸다. 이세돌은 훨씬 성숙한 20세 청년이 되어 다시 이창호 앞에 나타났다.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컵을 놓고 두사람의 천재가 다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21세기의 첫해에 시작된 두사람의 대결은 신기하게도 매년 한번씩 이루어졌다. 만약에 이세돌이 좀더 강해진다면 두사람은 빈번하게 대결하게 될 것이다. 올해, 그러니까 2003년이 그해일까. 다시 찾아온 이세돌은 과연 두번의 패배에 대한 빚을 받아낼 수 있을까.
2월 25일 시작되는 두사람의 세번째 결전을 앞두고 성급한 예측은 그만두자. 그대신 두사람의 무기와 전략, 이미지를 비교하면서 관전포인트를 점검해보자.  

(1) 이미지

▶ 승부사가 주는 이미지는 중요하다. 거기엔 모종의 운명같은 것이 담겨있다. 이세돌 3단의 이미지는 피빛을 띈다.

다가서면 베일 것 같은 면돗날의 날카로움. 피가 배어나올 것 같은 파르스름한 긴장감.

이세돌의 사나움은 그래서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사나움이라기 보다는 어두운 밤에 파랗게 안광을 품어내는 삵쾡이나 표범의 사나움에 가깝다.

▶ 반면 이창호의 이미지는 무색(無色)에 가깝다.

어스름의 새벽에 끝없이 뻗어나간 산맥과 같은 막막함. 은은한 강인함. 그리고 사막을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아득함.
산맥은 천년이 흘러도 끄떡이 없다. 사막을 흐르는 강물은 외롭다. 이창호에게서도 그런 강인함과 외로움이 공존한다. 그러나 이창호는 언제나 비슷한 모습이다. 때로는 근심하는 촌부처럼 소박하게 정성을 다하여 어스름의 산야를 걸어간다.

▶ 이창호의 무색과 이세돌의 피빛. 그러니까 이창호가 캔버스라면 이세돌은 물감이다.
이창호라는 거대한 산맥을 생명력 넘치는 이세돌이 표범처럼 질주한다. 멋진 그림이다. 이미지만으로 본다면 두사람은 잘 맞는 한쌍이며 조화로운 자연의 모습이기도 하다.
두사람이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승부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이들의 승부는 장엄한 의식(儀式)이 된다.

(2) 전략, 그리고 관전포인트

▶ 2001년도의 첫 대결(LG배 결승전)은 이세돌 3단이 2대 0으로 앞서가다가 그다음 3연패했다. 두번의 승리는 이세돌의 완승이었고 3국에서도 이세돌은 마치 접바둑을 두는 상수처럼 좌충우돌했다.

그 기합과 예기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이세돌의 승리가 거의 굳어졌다 싶을 때 이창호의 무서운 검무(劍舞)가 시작됐다. 패배를 인식하자 이창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격렬해졌고 이 서슬에 이세돌도 한발두발 물러섰다.
결과는 이세돌의 7집반 대패.

이 3국에서 이세돌이 승리했더라면 바둑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당시 이창호는 오랜 정상군림 끝에 조금은 지루해져 있었고 그것이 이창호의 탁월한 집중력을 아주 조금 풀어놓게 만들었다. 때마침 이세돌이 이창호를 크게 위협했고 이창호는 내심 놀랐을지도 모른다.

▶ 두사람의 전략은 실리와 전투라는 두가지 명제와 직결된다.
이세돌은 전투를 원한다. 이창호의 자존심은 여기서 갈등한다. 전투는 자신의 스타일이나 무기가 아니다. 이세돌과의 전투는 대단히 위험하다. 그러나 전장에서 싸움을 피하는 것은 자칫 비겁하게 보일 수 있다. 더구나 이세돌은 후배 아닌가.

이창호는 그래서 이세돌을 만나면 싸웠다. 격전의 연속이었다. 종종 이창호의 대마가 죽는 참변을 겪기도했다. 이창호는 점차 전투의 타이밍을 늦추는 전략으로 돌아서게 됐다.
싸우긴 싸우되 상대가 도전하면 바로 응전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면 적절한 시점을 골라 응전하는 것. 이 전투의 타이밍이야말로 이번 이창호 - 이세돌 결전의 첫번째 관전 포인트일 것이다.

▶ 이창호 9단은 두텁고 이세돌 3단은 빠르지만 두사람 모두 실리에 민감하기 그지없는 바둑이다. 이세돌 역시 실리를 먼저 선점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그점에선 이창호도 마찬가지다.

2002년의 왕위전. 여기서 이세돌은 종종 세력바둑을 구사했다. 세력을 펼쳐놓고 뛰어든 이창호의 대마를 공격하여 한번은 전멸시키기도 했다. 결국은 2대 3으로 패배했지만 이세돌의 세력취향은 많은 의문을 낳았다.
그래서 유창혁 9단에게 물어봤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해다.

"세력이 좋아서 세력을 택한 것이 아니다. 이창호 9단이 먼저 실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부득이 세력으로 간 것이다."

이번 대결에서도 두사람은 실리라는 위험한 떡을 앞에 놓고 치열한 암중모색을 펼칠 것이다.

▶ 실리를 먼저 차지한 쪽은 당연히 상대의 공략에 시달린다. 바둑에서 공격이란 종목과 타개(打開)라는 종목은 어느 쪽이 어려운가. 난이도로 따지만 아무래도 공격 쪽인 것 같다.

이창호 9단은 물러볼 것도 없는 타개의 달인이고 공격은 여간해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이세돌 3단의 경우 사나운 공격도 좋아하지만 그의 기량은 수비, 즉 타개 쪽에서 더욱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실리를 먼저 차지한 쪽은 전투에서도 공격이 아니라 수비를 택하게 된다. 따라서 전투의 승산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마구 실리를 탐해도 되는가. 아니다. 엷어지는 날엔 뼈도 못추리는게 현대바둑이다. 더구나 이창호나 이세돌 정도의 실력자들 앞에서 엷어터진 바둑을 구사하다가는 몇걸음 못가서 동티가 난다. 실리를 가리켜 위험한 떡이라 말한 이유다.
그러므로 엷어지면 안된다. 하지만 엷음이라는 폭탄이 다가오기 1초 전까지 최대한 실리를 취해야 하고 빠르게 취해야 한다. 목숨을 건 이 실리 취하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이창호 - 이세돌전을 감상하는 중요한 관전포인트다.

# 2003년의 세번째 대결을 앞두고 한가지 추가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둑팬들도 느끼고 있겠지만 최근 이창호 바둑이 한층 깊어진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숲이 좀더 울창해졌다고 할까.

이세돌 3단 역시 지난해 MVP(최우수기사)에 오른 후 관록과 권위가 더해진 느낌이다. 이 3단은 만20세. 두뇌활동으로 친다면 최절정의 나이다.

군자는 사흘을 보지 않으면 괄목상대(刮目相對)해야 한다고 했다. 군자는 매일 학식과 지혜가 늘어가니까 사흘만에 만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은 발군의 천재들이다. 이들은 지난 8월 왕위전을 끝으로 무려 반년만에 다시 만나고 있다. 그러므로 그 1백 80일 동안 이들은 분명 변했을 것이다. 그 변화가 판위에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점을 관측하는 것도 또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http://baduk.mgame.com/column/?menu=6

 

넘치는 인정, 왁자지껄 엠게임 바둑

 

baduk.mgame.com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