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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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nn/월간중앙] [LG배]이세돌과 이창호

교선생 2020. 1. 21. 13:29

 

 

<차기 대권(大權) 향한 천재 이세돌의 질주>

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비금도(飛禽島)라는 섬이 있다. 그곳에서 이상훈 - 이세돌 형제 프로기사가 탄생했는데 세돌의 이름은 형 상훈 때문에 일찌감치 유명해졌다. 스토리는 이렇다.

상훈은 15세에 프로가 됐고 거친 파괴력을 지닌 싸움바둑으로 대번에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상훈의 동갑내기로 저 유명한 이창호 9단이 버티고 있었다. 이창호란 존재는 상훈에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왔고 어느덧 소년 티를 벗은 상훈은 시합에서 지는 날이면 폭음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상훈은 "나는 기재(棋才)가 부족하다. 그러나 내동생 세돌이는 다를 것이다."며 바둑을 단념이라도 한듯 군에 입대해버렸다.

상훈은 점점 잊혀졌지만 상훈의 바로 그 한마디 때문에 세돌이란 이름은 바둑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떠나지 않았다. 까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아버지 이수오씨의 손을 잡고 전국의 바둑대회를 전전하던 꼬마 이세돌은 권갑룡 도장에서 수련하며 점점 강해지더니
1995년 드디어 프로의 관문을 뚫었다.

세돌은 프로가 되자마자 조훈현 9단과 공개 시험대국을 가졌는데 정선으로 두어 승부는 빅이었다. 조 9단은 대국 후 "훌륭한 재목"이라고 감탄하면서 특히 이창호 스타일과 전혀 다른, 다시말해 조훈현 자신의 스타일과 아주 흡사한 이세돌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창호 9단은 조훈현 9단의 제자였기에 조 9단은 누구보다 이창호를 잘 안다. 조 9단은 승부에서 이창호에게 매번 지는 편이었지만 이창호의 바둑 감각에 대해서만은 흔쾌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나이가 들어 승부에서는 밀리지만 자신의 스타일이 이창호 스타일보다 낫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그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천재라는 소문과 함께 출발한 이세돌은 그러나 사람들의 부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5년에 5승 5패 (50%)

1996년에 32승 21패 (60.4%)

1997년에 55승 21패 (71.4%)

1998년에 40승 17패 (70.2%)

1999년에 47승 20패 (70.2%)


<거칠고 빠른 바둑>

그의 바둑은 거칠었고 사나웠다. 수읽기가 빨랐고 파괴력도 대단했다. 이건 분명 타고난 재능을 말해주는 징표였다. 하지만 세돌은 또래의 유망주들에 비해 특별히 나을 것도 없는 성적표를 받고 있었고 선배 프로들의 평가도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중성이 없어. 그런 식으로 이창호를 어찌 상대하겠나."

"너무 거칠고 손이 빨라. 실수가 그렇게 많아서는 어찌 해볼 수 없는거야."

주위의 기대에 찬 시선이 부담스러웠을까. 아니면 천성이었을까. 세돌은 바둑을 빨리 두어 치웠고 좋은 바둑도 싱겁게 역전당하곤 했다. 바둑계 인사들은 많은 재능에도 불구하고 뭔가 마지막 한가닥이 부족했던 프로들, 즉 김희중 9단이라든가, 서능욱 9단 등을 떠올리게 됐다. 세돌 역시 신중성이 결여된데다 끈기나 투혼같은 승부기질이 부족하여 정상 정복에 실패했던 그들의 전철을 밟게되는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때마침 바둑계엔 최철한 3단, 원성진 3단, 박영훈 2단 등 이세돌의 후배 유망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고 어느덧 시선은 그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프로 입단 6년 째인 2000년, 이세돌 3단이 돌연 대질주를 시작한 것은 이런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그는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고 한판 한판 정성을 다해 승리를 쌓아갔다.

이세돌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월 1일부터 5월 17일까지 4개월 여동안 32연승을 거둔 끝에 입단 동기생인 조한승 4단에게 패배했다. 이 과정에서 세돌은 불패소년이란 별명을 얻게 됐는데 과거 이창호 9단이 소년시절 41연승을 거둔 끝에 지지않는 소년이란 별명을 얻은 것과 과정이 매우 흡사하다.

다만 이창호의 연승행진이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면 이세돌의 그것은 돌연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1999년까지의 이세돌과 2000년의 이세돌 사이에는 큰 차이가 발견됐는데 그것은 신중성이었다. 세돌은 전보다 훨씬 신중한 자세로 종종 제한시간을 다 쓰는 모습도 보여주곤 했던 것이다.

서능욱 9단은 염주를 들고 다니며 바둑을 둘 때는 염주알을 헤아림으로서 자신의 속기를 제어하려 했으나 타고난 천성을 어쩌지 못했다.
이에 비해 이세돌은 독한 마음을 먹자 굉장히 신중해졌다.

군에서 제대한 뒤 전과 다른 투혼을 보여주던 형 상훈이 이무렵 세돌과 함께 신인왕전 결승에 올라 우승컵을 놓고 형제대결을 펼치게 됐다. 이 대결에선 상훈이 이겼는데 아무튼 비금도에서 어린 자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라 여생을 바쳤던 아버지 이수오씨는 지하에서 무척 기뻐했을 것이다.

연승행진은 깨졌지만 세돌은 계속 승승장구했다. 운도 따라주었다. 박카스배 천원전에선 유재형 4단이란 신인강자가 준결승에서 이창호 9단을 잡아주는 바람에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을 꺾고 결승에 오른 세돌은 생애 첫 타이틀을 유재형을 상대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두번째 타이틀은 연말에 벌어진 배달왕기전이었다. 타이틀보유자는 유창혁 9단이었고 승부는 2대 2까지 팽팽하게 이어졌다. 최종 결승전은 불리하게 흘러갔고 패배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창혁의 돌연한 난조가 이어지면서 세돌은 압승을 거두게 됐다.

1인자 이창호를 상대로 타이틀을 딴 것은 아니지만 이세돌은 단숨에 2개의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유창혁을 꺾음으로서 연말의 MVP를 차지하는 영광도 얻게된다. (배달왕기전에서 졌다면 MVP는 삼성화재배 세계기전을 제패한 유창혁이 차지했을 것이다.)

2001년 새해가 열리자마자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은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에서 각각 일본의 1인자 왕리청(王立誠) 9단과 중국의 1인자 저우허양(周鶴洋) 8단을 꺾고 결승에 오른다.

王 9단은 일본의 기성이고 周 8단은 이창호 킬러로 이름을 떨치다가 새로 중국의 1인자가 된 인물이다.


<바둑 바깥 세상을 알고 싶은 황제 이창호 9단>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 이창호의 컨디션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 9단은 세계최대의 잉창치(應昌期)배에서 중국의 창하오(常昊) 9단을 3대 1로 꺾고 우승하긴 했지만 승리의 과정이 전과 달리 힘겨워 보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의 이창호에게서는 승부를 지루하다고 느끼는 분위기가 있었다. 승부에서 이건 아주 중요한 요소다. 나는 이창호를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인터뷰했는데 그때마다 가장 궁금한 점이 "바둑을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였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이창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일 밤 늦게까지 바둑과 더불어 살았다. 하루 왼종일 전력을 다해 바둑을 두고 집에 가서는 새벽 2시 무렵까지 그 판을 검토했다. 어린 나이에 그런 식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은 곧 이창호의 천부의 재능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둑에 몰두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그런 노력을 계속할 수 없다. 이창호는 그러나 이런 패턴을 꾸준히 이어왔고 물어볼 때마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건 기적과도 같았지만 이창호는 꿈 속에서도 바둑만을 생각하는 듯 바둑에 몰입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집중력이 이창호를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이창호에게선 놀랍게도 "지루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창호에게 골프라는 운동을 권해본 일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다.

"바둑과 승부의 패턴이나 흐름이 유사하다면서요."

그래서 아마도 그런 것 같다고 말하자 "그렇다면 안되겠는데요."하는 것이었다.

이 한마디가 섬뜻 가슴을 쳤다. 이창호의 눈은 뭔가 바둑과는 다른 세상을 찾고 있었고 그 세계를 알고 싶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술 거울 속 같은 바둑에 빠져 2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단 한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던 이창호가 이제 바둑판 밖에는 뭐가 있나 살피며 인생의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인자의 권자에 오래 앉아 있노라면 목표 상실감 비슷한 권태로움에 젖어들 수 있다. 김인 9단이라든가 다른 일인자들도 그런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창호의 나이는 만 26세. 한창 물이 오른 청년기에 바둑이 인생의 전부냐는 생각 또한 없을 수 없다. 이창호로선 동료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싶고 여성이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관심이 없을 수 없다.

말이 없던 이창호는 전보다 훨씬 상냥(?)해졌고 다른 사람들과 함게 있을 때도 바둑만 생각하느라 멍하니 있곤 하던 모습은 어언 자취를 감췄다.그는 변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이창호와 이세돌의 격돌이 시작됐다는건 어떤 의미에서 운명적인 느낌마저 준다. 미묘한 시기였다. 겁없이 차고 올라오는 이세돌을 맞이하는 이창호는 지긋이 번뇌에 잠겨있는 황제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러나 프로기사등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창호와 이세돌의 대결을 앞두고 아직은 신구미월령(新鳩未越嶺)이 아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나 역시 그런 글을 썼다.

"이세돌은 아직 어린 비둘기라서 이창호란 재를 넘기 힘들 것이다."

이세돌이 LG배 준결승에서 이창호에게 3전 3승을 거두고 있는 저우허양 8단에게 역전승을 거둔 것 부터가 이창호 우승으로 가는 스토리가 아니겠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2월 26일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벌어진 LG배 결승 첫판에서 예상을 뒤엎고 이창호 9단의 대마가 죽어버렸다. 1백26수만에 백을 쥔 이세돌이 불계승을 거둔 것이다.

깜짝 놀란 시선들이 이튿날 벌어진 2국에 집중됐다. 두번째 판에서 흑을 쥔 이세돌은 철저한 실리전법으로 이창호의 의표를 찌른 뒤 상대의 공격을 역습하여 대승했다. 역시 단명의 불계승.

이 두판의 바둑은 바둑계에 엄청난 충격과 화제를 몰고왔다. 이창호와 이세돌은 아직은 한 체급 정도는 달라보였다. 그동안 이창호란 인물에게 쏟아진 찬사의 분량이 열가마니에 해당한다면 이세돌에게 던져진 찬사는 한됫박이 될까말까 할 것이다. 아직은 전혀 비교가
안되는 것이었다.

이창호가 슬럼프라고는 하지만 아직 결정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며 더구나 그는 최근 세계최대기전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왜 이세돌이 2대 0으로 이겨가는 것일까.

전적보다도 내용이 더 큰 충격이었다. 이창호가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강풍에도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던 이창호가 이세돌의 폭풍에 가랑잎처럼 휩쓸려갔던 것이다.

첫판부터 다시 돌이켜보자.


<공격적이면서도 실리에 밝은 바둑>

이 대국에서 흑을 쥔 이창호는 실리전법으로 나왔다. 계산에 탁월하고 타개능력이 뛰어난 이창호가 종종 쓰는 전법이다. 물론 그는 실리로 두더라도 엷게 두지 않는다.

이세돌은 이끌려가는 듯 싶었다. 백을 쥐게되면 초반엔 상대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둑이긴 하지만 그는 상대가 해달라는대로 해주면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것은 오히려 이창호의 수법을 연상케했다. 당하는 듯 하면서도 초조해 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이창호의 저 유명한 기다림말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세돌은 자신의 진영을 크게 키워갔다. 상대가 공격자세로 위협해왔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빼 자신의 진영을 키운 것이다.

강조하거니와 이창호는 공격바둑이 아니다. 그는 본능적으로 공격을 싫어한다. 파괴적인 수법을 읽어놓고서도 결행하는 대신 상대가 지키도록 유도하는 스타일이다. 공격할 때 공격하지 않아도 그는 계산으로 이겼다. 유명한 신산(神算)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이 판에서 이창호는 공격을 망설이다가 백진 속으로 깊이 뛰어들었다. 충분히 뛰어들만한 곳이었기에 이 대마가 죽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우선 이창호란 사람은 위험한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그는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는 사람이다. 지난 오랜 세월 그는 신중의 극치를 보여주곤 했다. 이창호가 살리기로 작정하면 죽는 법이 없었고 그래서 이창호의 대마는 죽지 않는다.는 인식이 누구에게나 심어지게 됐다.

그 이창호를 상대로 이세돌이 공격의 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다.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이창호 컴플렉스가 이 젊은이에겐 전혀 없는 듯 보였다. 순간 이창호의 행마가 삐긋했고 그 한번의 실수 이후 흑에겐 영영 사는 길이 없었다.

이창호의 신화가 아니더라도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격언을 모르는 프로는 없다. 그러니까 이창호의 대마를 잡으러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며 잡으러 가는 척만 하다가 타협하는게 상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세돌은 끝까지 갔다. 관을 보고서야 눈물을 흘리는 겁없는 청년 장수처럼 최후까지 밀고 들어갔다. 이같은 강수 일변도의 전략에 이창호는 중도에 방향을 바꿀 기회조차 없었다. 마치 정해진 코스를 따라 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아가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뿐이다.

그 죽음과 함께 이창호의 무력감이 느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창호가 무력하게 비치디니!

흑번에 강한 이창호가 제1국에서 흑을 쥐고 진 것은 굉장한 타격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난전 속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이 승부를 놓고 이창호를 다시 생각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천하의 명장도 난전의 와중에서 눈먼 화살에 맞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궁금중 속에서 2국이 이튿날 열렸다.

흑을 쥔 이세돌은 빠르게 집을 차지해 나갔다. 이세돌의 기풍은 공격적이면서도 실리에 강하다. 전체적으로는 실리적이라 말할 수 있다. 바둑이란 실리를 차지하면 필연적으로 엷어지는데 이 엷음을 커버하려면 힘, 즉 전투능력이 좋아야한다. 두터움을 위주로 하는 바둑보다 실리바둑이 오히려 전투에 능한 까닭도 여기있다. 조훈현 9단이 그렇고 서봉수 9단도 그렇다.

물론 이창호 9단이나 유창혁 9단도 전투에 능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전투는 치열하지는 않다. 본질적으로 실리보다는 두터움 쪽이기에 대세로 밀어붙이는데 능한 것이다.

이창호의 바둑은 실리적이진 않지만 실리가 아주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그는 계산에 능한 바둑이라서 바둑 자체의 전체적인 계산서가 나올 수 있는 바둑을 선호한다. 난전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초반에 집을 차지해두면 계산도 편해지고 이창호 식의 전략을 세우기도 편해진다.

물론 이창호는 집 없이도 잘 둔다. 두터움을 가지고 서서히 압박하며 그것을 실리로 전환시키는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상대의 엷음을 곧장 찌르지 않더라도 상대가 지킬 때를 기다려 서서히 집으로 추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2국에서 이세돌은 집을 차지하면서 전혀 타협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집을 차지한 뒤 엷은 곳을 보완하거나 대마에 가일수 하는 것이 바둑의 상식인데 이세돌은 계속 강수로 나갔다.


<고양이 발톱같은 殺劍의 공격력>

이건 이창호로서는 매우 당황그러운 노릇이었을지 모른다. 집은 없는 대신 상대의 곤마는 많다. 상대는 곤마를 놔둔채 집을 계속 챙긴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당연히 총공격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두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거듭 얘기하지만 이창호는 공격해서 반드시 돌을 잡아야하는 상황을 싫어한다. 여지랄까, 여백이 있는 승부, 변환이 가능한 승부를 선호하며 잡지 않으면 지는 절박한 승부호흡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창호에게 상대의 허리를 분질러버리는 힘이 없는게 아니다.
이런 호흡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란 얘기다.

반면 이세돌은 접전에 능하고 힘이 천하장사다. 수도 아주 빨리 본다. 그런 이세돌이 이창호에게 부담스럽다. 싫어하는 진로에 부담스러운 상대. 이것이 이창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이창호는 전면 공격에 들어갔으나 이세돌은 쉽게 타개해버렸다. 오히려 틈을 노려 반격에 나서더니 바꿔치기를 성공시켜 압승을 거뒀다.
시원한 스케일이었고 시원한 스토리였다.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세돌은 이미 이창호가 괴로워할만틈 강자가 된 것인가. 이창호는 이세돌의 어떤 점 때문에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졌을까. 그것이 이창호의 진정한 실력인가, 아니면 이창호의 진면목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인가.


다가서면 베일 것 같은 면돗날의 날카로움.

살짝 닿아도 피가 묻어날 것 같은 파르스르한 긴장감

고양이의 등처럼 휘어진 칼칼하고 사나운 호흡


이것이 이세돌 바둑의 전체적인 인상이다. 스스로 밝히듯 세돌은 공격적이다. 그러나 둔중한 해머의 공격이 아니라 고양이 발톱같은 공격이다. 같은 과(科)로 분류되는 조훈현 9단이 비할바 없는 빠르기를 지닌 쾌검이라면 이세돌은 한번 찌르면 반드시 피를 보는 살검(殺劍)에 가깝다 하겠다.

그렇더라도 이런 스타일만으로는 이창호의 부동심을 흔들어 놓을 수는 없다. 이창호 9단은 보기 드물게 겸손한 사람이지만 일인자의 자존심만은 확고하다. 그는 끝없이 다가오는 이세돌의 예봉을 피해 장기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을 가능성이 있다. 자존심이 돌부처라 불리던 이창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원흉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창호는 오래 전부터 스타일의 변화를 시도하곤 했다. 기다림과 계산의 바둑이 어딘지 재미없는 것 아니냐는 팬들의 요구도 있었지만 본인 스스로도 다양한 수법을을 시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판국에 이세돌이 걸어오는 싸움을 계속 피한다는 것이 스스로 비겁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이창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자니까 말이다.

또 하나, 이세돌의 속기도 이창호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두사람의 소비시간을 보면 1국에서 이창호 = 2시간 31분, 이세돌 = 2시간 15분이다. 2국은 이창호 = 2시간 55분,
이세돌 = 1시간 55분.

1국은 엇비슷했지만 2국에선 이창호가 초읽기에 몰린데 반해 이세돌은 대국이 끝났을 때 1시간 이상 시간이 남아있었다.

상대의 속기는 이쪽의 손도 빨리 나가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상대는 빨리 두는데 최강자라는 사람이 계속 장고하기란 자존심이 상하는 노릇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상황이 이창호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결승전이라면 거의 언제나 선배들과의 대결이었는데 후배와 대결한다는 것부터가 이창호로서는 조금 생소한 일이기도 했다. 이창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본연의 승부호홉이 아닌 자신이 싫어해온 급전의 승부를 벌여 두판 연속 패배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이창호는 앞으로 예전의 호흡으로 돌아갈까.

이 대목이 궁금하다. 예전의 호흡으로 돌아가려면 우선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이창호 본연의 기다림과 계산의 바둑은 철석같은 부동심(不動心)을 전제로 한다. 이 부동심만이 이창호 특유의 집중력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을 버리는 것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며 동시에 부동심과 집중력을 회복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 이창호가 이세돌에게 1대 2로 밀리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 많은 프로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창호가 전성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승부는 이제부터일 것이다."

이 말은 이창호가 막판에 몰렸지만 진정한 실력에서 이세돌은 아직 이창호에게 미달하지 않느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대교체의 바람은 부는가>

그렇다. 이창호에겐 신비로운 힘이 있었다. 그 신비로운 힘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어 전생 고수의 환생이니 신산(神算)이니 불가사의(不可思議)니 하는 이상한 해석이 뒤따르곤 했다. 이창호가 실수하면 프로들이 먼저 "이창호도 인간이었다."며 오히려 감탄하곤 했다.

그 무수한 순간과 세월들을 기억한다면 이세돌은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창호가 회복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해석이 맞는 것이다. 초점은 그러므로 "이창호가 회복할 수 있느냐"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리고 그 해답은 이창호만이 알 수 있다.

한국바둑사에서 일인자의 계보는 조남철 9단(78) - 김인 9단(58) - 조훈현 9단(48) - 이창호 9단(26)으로 이어진다.
세대교체를 위해선 10년 또는 20년씩 차이가 나는데 조남철 9단은 홀로 독주하는 세월이 길었고 조훈현 9단은 너무 강해 후계자가 늦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세돌은 이창호보다 8년 어리다. 세상이 빨라진 것을 감안할 때 그는 일인자의 바톤을 이어받을 적절한 나이일 가능성이 크다.

기풍(棋風)으로 봐도 조남철(실리) - 김인(두터움) - 조훈현(실리) - 이창호(두터움)으로 이어져 왔기에 다음 일인자는 실리 계열일 가능성 또한 높다. 일인자를 꺾기 위해선 같은 스타일보다는 상극의 기풍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 - 이세돌이 황태자의 요소를 갖췄다는 점들 - 을 감안하더라도 이창호로부터의 세대교체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빠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창호는 너무 젊고 나이로 봐서 전성기에 있다. 더구나 그의 본 보습은 몸서리가 쳐질만큼 강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창호가 약점을 보이고 있을 때 이세돌이란 강적이 나타난 것은 자연의 섭리일 수 있다. 세상을 그런 우연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곤 한다. 그러나 아직은 좀 더 긴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둑계는 지난해부터 춘추전국시대의 조짐을 드러냈다. 이창호가 슬럼프를 보이고 조훈현이 나이를 더 먹으면서 타이틀 보유자가 7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이창호 9단,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 최명훈 7단, 목진석 5단, 이세돌 3단이다.

4인방시대, 즉 최강 이창호 아래 조훈현, 우창혁, 서봉수 3웅이 버티고 있던 시절이 막을 내리고 돌연 예측불허의 춘추전국시대로 옮아간 것이다. 전국시대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이창호는 여전히 세계가 인정하는 고수이고 조훈현은 50이 다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파워를 잃지 않고 있다. 30대의 유창혁은 은인자중 칼날을 다듬고 있으며 겁없는 이세돌은 지금 막 이창호의 본거지를 향해 내달리며 왕관을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러므로 전국 7웅(雄) 중에서 아마도 이 4인이 좀더 넓은 영토를 차지할 것이고 더욱 좁힌다면 (시간이 좀더 흐른다면) 이창호와 이세돌의 싸움으로 낙착을 보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싸움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며 앞으로도 길고 긴 혈전이 이어진 것이란 점이다.

* 참고사항 = 이세돌의 누나 이세나는 이화여대 재학시절 아마추어 참피언에 오르기도 했으나 한 집안에 프로기사는 2명이면 족하다며 아마추어로 남았다. 세돌의 바로 윗 형인 차돌 역시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웠으나 바둑보다는 공부에 더 출중한 재능을 보여
방향을 틀었다. 현재 서울대 공대 재학중. 이들 3남 2녀 5남매는 한국기원 근처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상훈과 이세돌은 형제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바둑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나이 차가 있어서인지 생활 반경이 다르며 각자 자기 또래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있다.




* 위의 글은 필자가 월간 중앙 4월호에 연재했던 것이다. 이세돌 3단이 LG배에서 이창호 9단을 2대 0으로 리드한 가운데 LG배는 휴식에 들어갔고 그 사이 이 글을 쓰게 된 것인데 현재 재개되고 있는 LG배와 양웅의 대결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전재했다.

5월 15일 열린 LG배 결승 3국에서 이창호 9단은 벼랑 끝 반격을 성공시켰다. 중반까지 이 9단은 이세돌 3단의 강수에 휘말려 크게 불리했다. TV해설에 나선 조훈현 9단도 백을 쥔 이 3단의 낙승을 예고했다. 하지만 모두들 이세돌 3단의 우승을 의심치 않고 있던 그 시간, 대국장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에서는 대 역전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바둑은 결국 이 9단이 7집반의 대승을 거뒀다. 각 신문마다 이세돌의 세대교체내지는 새 1인자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가 황급히 교체해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3단이 떨렸을까. 아니면 방심했을까. 세계기전이니까 우승컵이 다가오면 가슴이 떨리는건 당연하다. 그것도 천하의 이창호를 상대로 한 것이니 더욱 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세돌 3단의 대담성을 생각하면 방심 쪽의 혐의가 더 짙다. 한편으로 가슴이 설레는 가운데 방심이 끼어들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집중력이 크게 떨어졌을 수고 있다.

아무튼 승부는 17일의 4국으로 이어지게 됐고 팬들은 한번 더 드라마를 구경할 수 있게 됐다. 결말이 어떻게 나든 이창호 9단은 젊고 이세돌 3단은 강하니 이둘의 싸움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혈전은 이제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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