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바둑팬 여러분.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바둑 기자로 현장을 뛰면서 그동안 건조한 뉴스로만 만났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단지 '지구에 사는 한 종의 생명체'로서 취재 현장에서 갖는 느낌ㆍ풀어놓지 못하고 지나쳤던 생각들을 가벼운 기분으로 펼쳐 봤습니다. 뉴스 고유의 마른 글투에서 힘을 쫙~ 빼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썼으니 편안하게 봐 주시기 바랍니다. 구리의 고뇌 한·중·일의 프로기사 누구나 실력을 인정하는 구리 9단. 그의 얼굴엔 진지한 표정이 많다. ‘구리 9단이 엄청난 개그를 해 좌중이 박장대소하게 했다’는 얘기는 잘 못 들어 본 것 같다. 언젠가 국가를 위해 바둑을 둔다고 말한 적이 있다(아나키스트인 내 후배는 이 말을 몹시도 싫어한다.) 국가의 안위와 명예를 걱정하는 우국지사처럼 그렇..
[일요신문] 1991년 여름 늦은 오후, 권갑용 바둑도장. 원장실에 들어가니 웬 꼬마가 혼자 비스듬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뭔가 읽고 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나?” “외출하셨어요.” “다들 리그전 두던데 넌 왜 안 두니?” “밖에 제 상대가 없어서 쉬는 중이에요.” “그래? 그럼 나하고 둬 볼래?” “그런데 누구세요?” “응? 권 사범님 친구야. 나도 프로거든.” 테스트 겸 두 점을 놓으라고 했는데 싫은 표정이 역력하다. “그럼, 내가 특별히 한 판만 이기면 치수 고쳐줄게. 한번 잘 둬봐.” 당시는 혈기왕성한 30대, 빠른 손으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같은 템포로 두는데 바둑은 전혀 안 밀린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속도’에서 맞짱을 뜨니 승부사의 자존심이 끓어올랐다. 알고 있던 ..
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비금도(飛禽島)라는 섬이 있다. 그곳에서 이상훈 - 이세돌 형제 프로기사가 탄생했는데 세돌의 이름은 형 상훈 때문에 일찌감치 유명해졌다. 스토리는 이렇다. 상훈은 15세에 프로가 됐고 거친 파괴력을 지닌 싸움바둑으로 대번에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상훈의 동갑내기로 저 유명한 이창호 9단이 버티고 있었다. 이창호란 존재는 상훈에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왔고 어느덧 소년 티를 벗은 상훈은 시합에서 지는 날이면 폭음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상훈은 "나는 기재(棋才)가 부족하다. 그러나 내동생 세돌이는 다를 것이다."며 바둑을 단념이라도 한듯 군에 입대해버렸다. 상훈은 점점 잊혀졌지만 상훈의 바로 그 한마디 때문에 세돌이란 이름은 바둑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떠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