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爱相杀
하루를 쉬고서 제2국이 속개되었다. 쉬는 하루 동안 구리는 여러 차례 백담사 인근을 산책했다. 이세돌은 자기 숙소에서 칩거했다. 이세돌은 이번 3번기를 위해 진작부터 컨디션 조절을 생각했으나 그 추진에 차질이 있었다. 그는 대국 장소인 백담사를 적어도 사흘 전에 찾아가 운기조식을 할 예정이었고 그것을 주선하도록 한국기원에 부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섭섭한 마음에 제1국을 보이콧할 결심을 하고 백담사에 가지 않았다. 형인 이상훈이 부랴부랴 설득에 나섰다. 이상훈과 이세돌은 다른 관계자들이 백담사에 모두 도착한 시각에 비로소 서울을 출발했다. 대전 택시가 백담사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2시 30분이었다. 이세돌은 6시간쯤 자고 일어나 대국실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제1국을 불계패당했다. 대마를 잡..
새 시즌 갑조리그 4라운드 결과, 충칭팀의 성적은 2위를 달리고 있지만 대국장에는 구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 중국 바둑 일인자는 이제 다른 곳에서 포석을 놓고 있다. 현재 충칭팀에서 구리의 신분은 코치 겸 선수로, 1999년 제1회 갑조리그 이래 그는 매 시즌 빠진 적이 없었다. 이제는 작별을 말할 때가 온 듯 하다. "좀 서글프긴 하지만 그래도 좋아요.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올 순간이죠." "대국장의 일은 커제와 후배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저는 바둑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바둑이라는 우리의 골목은 너무 깊어요. 설사 술이 향기롭다 하더라도 이렇게 골목이 깊으면 찾아내기가 힘들죠.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도 그 향을 맡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거에요." 20..
2003년 여름 KT배마스터즈 결승3번기 최종국을 치르던 날 저녁으로 기억한다. 이세돌은 입단시절부터 '이창호의 뒤를 이을 천재소년'으로 주목돼 왔으므로 잘 알고 있었으나 저녁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승3번기 제1국을 이겨 타이틀을 눈앞에 두었다가 제2, 3국을 연패하는 바람에 타이틀은 유창혁의 품으로 넘어갔고 소년은(실은, 83년생이니 만으로 따져도 열아홉 청년이었는데 앳된 그의 얼굴은 오히려 중고생이라고 해야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다소 지치고 우울한 심사를 애써 감춘 표정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서능욱 9단이 한국기원 근처 '특우정'에서 저녁을 샀는데 지금은 한국기원에서 은퇴한 문용직 5단(KT배 관전기자, 정치학 박사)과 KT배 바둑TV 관계자 몇이 동석했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