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스크랩 (73)
相爱相杀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만났습니다. 지난 6월 말 기자회견에서 ‘많은 소통’을 약속한 이9단이 저녁이나 함께하자며 몇몇 기자를 부른 자리였습니다. 얼큰한 동태찌개를 안주 삼아 술잔이 도는 동안 이9단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어깨의 무거운 짐을 조금은 던 듯했습니다. 8월 9일 시작되는 강릉청소년바둑축제와 관련해 “청소년들의 바둑 사랑을 돕는 일이라면 무조건 현지에 내려가 돕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누군가 “진작부터 이런 자리를 자주 마련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하자 “그러게요”라며 웃음 짓기도 했지요. 오후 8시에 만난 자리가 밤 12시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못다 한 말이 많아 아쉽기는 하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 하나둘씩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나 이9단과 그의 형인 이상훈 7단은 선뜻 거리로 나서지 못..
바둑팬 여러분.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바둑 기자로 현장을 뛰면서 그동안 건조한 뉴스로만 만났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단지 '지구에 사는 한 종의 생명체'로서 취재 현장에서 갖는 느낌ㆍ풀어놓지 못하고 지나쳤던 생각들을 가벼운 기분으로 펼쳐 봤습니다. 뉴스 고유의 마른 글투에서 힘을 쫙~ 빼고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썼으니 편안하게 봐 주시기 바랍니다. 구리의 고뇌 한·중·일의 프로기사 누구나 실력을 인정하는 구리 9단. 그의 얼굴엔 진지한 표정이 많다. ‘구리 9단이 엄청난 개그를 해 좌중이 박장대소하게 했다’는 얘기는 잘 못 들어 본 것 같다. 언젠가 국가를 위해 바둑을 둔다고 말한 적이 있다(아나키스트인 내 후배는 이 말을 몹시도 싫어한다.) 국가의 안위와 명예를 걱정하는 우국지사처럼 그렇..
[일요신문] 1991년 여름 늦은 오후, 권갑용 바둑도장. 원장실에 들어가니 웬 꼬마가 혼자 비스듬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뭔가 읽고 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나?” “외출하셨어요.” “다들 리그전 두던데 넌 왜 안 두니?” “밖에 제 상대가 없어서 쉬는 중이에요.” “그래? 그럼 나하고 둬 볼래?” “그런데 누구세요?” “응? 권 사범님 친구야. 나도 프로거든.” 테스트 겸 두 점을 놓으라고 했는데 싫은 표정이 역력하다. “그럼, 내가 특별히 한 판만 이기면 치수 고쳐줄게. 한번 잘 둬봐.” 당시는 혈기왕성한 30대, 빠른 손으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같은 템포로 두는데 바둑은 전혀 안 밀린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속도’에서 맞짱을 뜨니 승부사의 자존심이 끓어올랐다. 알고 있던 ..
전라남도 신안군에 가면 비금도(飛禽島)라는 섬이 있다. 그곳에서 이상훈 - 이세돌 형제 프로기사가 탄생했는데 세돌의 이름은 형 상훈 때문에 일찌감치 유명해졌다. 스토리는 이렇다. 상훈은 15세에 프로가 됐고 거친 파괴력을 지닌 싸움바둑으로 대번에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상훈의 동갑내기로 저 유명한 이창호 9단이 버티고 있었다. 이창호란 존재는 상훈에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왔고 어느덧 소년 티를 벗은 상훈은 시합에서 지는 날이면 폭음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상훈은 "나는 기재(棋才)가 부족하다. 그러나 내동생 세돌이는 다를 것이다."며 바둑을 단념이라도 한듯 군에 입대해버렸다. 상훈은 점점 잊혀졌지만 상훈의 바로 그 한마디 때문에 세돌이란 이름은 바둑계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떠나지 ..
2001년과 2002년,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은 연속 격돌했다. 두번 모두 혈전이었다. 종가(宗家)의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이었다. 승부가 끝난 현장은 다 타버린 재와 같았다. 이창호는 두번 다 이겼고 이세돌은 두번 다 졌다. 이세돌은 비록 졌으나 내용은 충실했다. 돌부처라 불리는 이창호조차 간담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길 수 있는 승부였기에 패자 이세돌의 가슴은 더욱 쓰라렸다. 상처가 깊었다. 세월은 잿더미 속에서도 생명을 키워낸다. 이세돌은 훨씬 성숙한 20세 청년이 되어 다시 이창호 앞에 나타났다. LG배 세계기왕전 우승컵을 놓고 두사람의 천재가 다시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다. 21세기의 첫해에 시작된 두사람의 대결은 신기하게도 매년 한번씩 이루어..
후지쯔배 우승을 차지한 구리 9단이 부친의 묘소를 찾은 기사가 중국 인터넷에 실리면서 많은 바둑팬들의 격려와 잔잔한 감동을 낳았다. 아래 내용은 중국 시나닷컴에 난 기사를 옮겼다. “아버지, 제가 돌아왔습니다! 벌써 435일이 흘렀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바램을 져버리지 않고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후지쯔배 우승을 차지한 구리 9단이 지난 7월 10일 부친의 묘소를 찾았다. 후지쯔배 우승이 확정된 날 구리 9단은 부친을 생각하니 목이 메이고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7월 10일 충칭으로 돌아온 후 곧바로 공항에서 부친의 묘소를 찾았다. 베이징에서 충칭으로 갈 때 구리 9단은 붉은 색 T셔츠를 입고 있어 집에 들른 후 구리는 곧 검은 색으로 갈아입고 부친의 묘소를 찾은 것. 구리 9..
이수오(李壽五)씨는 기인(奇人)이었다. 바둑천재 이세돌의 아버지인 그는 44년 생으로 광주교대를 나왔다. 젊은 시절 목포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식솔들을 이끌고 고향인 비금도(飛禽島)로 유턴, 98년 세상을 뜰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아마 5단의 바둑실력과 함께 천문, 역사, 족보 등에 두루 해박한 인텔리였다. 말년의 그는 막내 세돌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다. 3남 2녀의 자녀 모두를 도시로 진출시키고 유일하게 세돌이만 곁에 남긴 채 바둑을 가르쳤다. 그의 바둑 교육방식은 특이했다. 아침에 농사일을 보러 나가기 전 사활(死活)문제를 내주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숙제를 점검하는 식이었다. 전직 교사이자 현직 농부였던 이수오씨의 막내사랑은 끔찍했다. 다섯 살 막내동이가..
천재란 신이 선사하는 위트이다. 그들의 재능은 시대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축복이다. 그들의 행동은 일반인의 문법을 벗어난다. 엉뚱하다. 때로 천재들은 백치같은 면모를 선보인다. 비범한 존재지만 평범한 일에는 터무니없이 서투르다. 묘한 엇박자다. 엉뚱함으로 포장된 축복. 천재성과 백치미의 낯선 동거. 신의 고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신의 미소는 보통 사람들에겐 난해하다. 천재들이 종종 시대와 불화를 빚는 이유다. 신세대 천재기사 이세돌 3단. 요즘 그는 태풍이다. 그 위력은 예상을 웃돈다. 한반도를 휘저으며 중국과 일본까지 간접영향권에 두고 위협한다. 세계 바둑계의 판도가 뿌리째 뒤흔들리고 있다. 이창호도, 조훈현도, 유창혁도 나가떨어졌다. 근래에 없던 초특급 태풍이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 진로를 지..
이세돌 9단에겐 저항적인 기운이 흐른다. 어딘지 외로워 보인다. 그는 어떤 현상이나 상황에 안주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말하고 생각이 다르다면 선배든 누구든 망설임없이 충돌한다. 이세돌은 결승전 상대가 누구이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저우허양”이라고 대답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바둑도 왕시가 강한 것 같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하지만 이세돌은 아주 영리하다.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강하고 화끈하게 행동하면서도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며 움직인다. 몸은 호리호리하고 약해 보이지만 이세돌은 표범과 같은 동물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하는 고양이과의 전형을 느끼게 해준다. 구리(古力) 7단은 몇 가지 점에서 이세돌과 비슷하고 몇 가지 점에서 아주 다르다. 예를 들어 호연지기가 강한 것은 둘이 비..
후야오위 8단의 해설은 쉽고 차근차근해서 초보자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이번에는 이세돌vs한돌 1국의 해설을 자신의 웨이보에 올려두었다. "이런 반격은 한돌에게 반대로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그라고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그는 두 점의 우세를 믿고 먼저 타협을 한 후, 이후에 천천히 AI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이세돌이 아니다. 이세돌은 상대가 반걸음이라도 선을 넘어온다면, 그것이 사람이든 AI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설령 AI의 할아버지 알파고가 온대도 그는 여전히 검을 뽑고 뛰어올라 상대와 사생결단을 벌인다." https://www.weibo.com/ttarticle/p/show?id=2309404451143005634696 Sina Visitor System passpo..